▶ [데스크 광장]
▶ 김인규 <편집국 국장대우>
어네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띠아고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그레고리오 뿌엔떼스씨가 13일 새벽 숨을 거두었다. 사인은 지병인 암이라 하나 향년 104세인 점을 고려하면 천수를 누린 셈이다.
헤밍웨이는 1928년 뿌엔떼스를 처음 만났고 쿠바가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으로 공산화한지 1년 뒤인 1960년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친하게 지냈다. 뿌엔떼스는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동쪽으로 약 15km 떨어진 바닷가 마을 꼬히마르에서 30년 이상 헤밍웨이를 위해 배를 젓거나 요리해주면서 낚시친구로 지내왔다. 많은 문학평론가들은 노벨상 수상작 ‘노인과 바다’는 뿌엔떼스에게서 영감을 얻어 저술한 것으로 보고 있다.
뿌엔떼스는 헤밍웨이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아바나 교외 산 프란시스꼬 데 빠울라(San Francisco de Paula)에 있는 헤밍웨이의 저택 ‘엘 삘라르’를 선물받았다.
뿌엔떼스는 비록 특정 성씨(姓氏)지만 스페인어로 ‘다리’를 의미하는 뿌엔떼(Puente)의 복수형이기도 하다. 뿌엔떼스는 결국 헤밍웨이에게 노벨상을 타게 한 ‘교량’ 역할을 한 후 그 대가로 저택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그는 이후 삘라르를 쿠바 정부에 헌납했다.
삘라르는 지금 헤밍웨이 박물관(Museo Momerial ‘Ernest Hemingway’)이란 공식명칭을 갖고 외국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이곳은 아바나에서 승용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삘라르는 외형상 호화 저택이라 불릴 만큼 크고 화려하다.
내부는 헤밍웨이가 쿠바에 머물 당시의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작품을 쓸 때 사용했던 타이프라이터, 동물박제, 9,000권에 달하는 책 등이 방안에 진열돼 있다. 바다와 접한 저택 한쪽 경사지에는 헤밍웨이가 자주 이용했던 중형의 요트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뿌엔떼스는 삘라르를 쿠바 정부에 바친 뒤 이곳에서 가까운 바닷가 꼬히마르로 되돌아와 살다 생을 마감했다. 꼬히마르(Cojimar)는 ‘바다(mar)에서 (고기를) 잡는다(coger)’는 단어가 합쳐지면서 어미(語尾) g가 j로 바뀐 것이다.
지명에서 풍기는 것처럼 꼬히마르는 옛부터 고기가 많이 잡히던 바다였다. 이곳 꼬히마르 바닷가에는 헤밍웨이의 흉상이 세워져 역시 외국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꼬히마르는 그러나 1994년 여름 수만명의 쿠바인들이 미국으로 탈출하기 위해 보트를 띄웠던 곳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더 알기 쉽게 다가온다.
쿠바에는 이외에도 헤밍웨이와 관계있는 명소가 꽤나 있다. 코발트색 맑은 물과 긴 백사장으로 유명한 ‘쁠라야 데 산따마리아’는 헤밍웨이가 가장 즐겨 찾았던 해변으로 유명하다. 아바나 구 시가지에는 소설을 쓰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들러 한잔씩 했던 바 등이 헤밍웨이의 사진, 유품 등을 전시해놓고 외국 관광객들을 불러 들인다.
이들 바에서는 헤밍웨이가 좋아했다는 ‘쿠바 리브레’란 칵테일을 예외없이 권한다. 식민 종주국 스페인과 독립전쟁을 벌일 당시 쿠바인들은 ‘쿠바 리브레(자유 쿠바)’를 외쳤다. 이것이 바로 가장 인기있는 쿠바산 칵테일이다. 특산 럼에다 레몬 또는 라임과 소다수, 얼음 등을 섞어 만든 쿠바 리브레는 독특한 풍미가 있다.
쿠바를 찾는 외국 관광객들이 헤밍웨이 관련물 외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갖는 소재가 바로 스페인 식민 시절 유적이다. 아바나 구 시가지에 있는 까떼드랄 광장, 산익나시모 거리 등은 중세 대표적 스페인 건축물로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쿠바에는 지금은 많이 약화됐지만 미국을 적대시하는 정서가 있고 독립 전쟁을 치르면서 싹튼 스페인에 대한 증오심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미국 및 스페인과 관련된 유물로 관광객들을 끌어 들이고 이것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되살리고자 몸부림치는 모습이 공산국 쿠바의 아이러니이자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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