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에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스태프라면 대통령의 ‘입노릇’을 하는 대변인을 첫 손가락에 꼽아야 한다.
주요 국정현안들에 대한 대통령의 견해와 처리방향이 그의 입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단 한마디의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생난리를 치러야 한다. 백악관 대변인에게는 발밑이 바로 지뢰밭이다.
신중하기로 유명한 부시 대통령의 언론창구인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이 최근 지뢰를 밟았다. 중동사태 격화의 책임을 빌 클린턴 전임 대통령에게 떠넘기는 발언을 했다가 직속 보스인 카렌 휴 공보수석의 서릿발같은 질책을 받은 것. 윗선의 명령대로 부랴부랴 자신의 말을 거둬들였지만 지뢰는 이미 터진 뒤였다. 그의 실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11사태 직후 부시 대통령의 처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말조심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가 스스로 말조심을 못한 죄 값을 톡톡히 치르기도 했다. 유색인
종 지위향상협의회(NAACP)가 그의 발언을 문제삼고 나서자 잽싸게 진화를 시도했으나 NAACP 간부들의 이름과 직책을 뒤죽박죽 뒤섞어 부르는 바람에 이들에게 완전히 찍히고 말았다.
백악관의 대변인은 절대 자기 목소리를 내선 안된다. 기자들의 유도성 질에 발언수위를 놓치거나 ‘각본’에서 이탈하면 낭패를 보게 된다. 기자들을 적당히 눙치며 "노 코멘트"로 넘어가야지 ‘맞장’을 뜨려다간 당하기 십상이다. 41대 부시 대통령의 입노릇을 한 말린 피츠워터는 명 대변인으로 명성이 높았으나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을 ‘잡화점의 카우보이’로 야유했다가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다부지게 얻어맞았다. 대통령의 ‘전용 입’이어야 할 그가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밝힌 것이 문제를 일으킨 셈이다.
사실 역대 백악관 대변인들 중 맘 편하게 업무를 수행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의 대변인이었던 아치 버트는 심리적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속병이 들었고, 대통령의 권유로 유럽으로 요양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끝내 백악관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영국에서 탄 귀국선이 하필이면 ‘타이태닉’호였기 때문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대변인 론 지글러는 대통령에게 폭행까지 당했다. 언론에 적개감을 갖고 있던 닉슨 대통령은 지글러가 취재진에게 너무 야들야들하게 군다며 그의 가슴팍을 거칠게 떠미는 군대식 ‘기합’을 주었다. 지글러는 "내 곁에 보도진이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라"는 닉슨의 추상같은 명령에 재직기간 두고두고 ‘내장탕’을 끓여야 했다.
대통령은 언론에 잘 보이려는 대변인들을 싫어한다.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언론 친화적인 인물로 대변인을 삼으라"는 주변의 권유에 "언론보다 내게 잘하는 사람을 써야한다는 게 내 신조"라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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