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승쾌의 세상 틈새 읽기]
▶ 임승쾌 (본보 편집국장)
우수·경칩이 막 지나던 이맘때.
大田방송 본부장 시절,
저는 한 젊은 목회자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희 방송 어느 프로그램을 청취하고 써보낸 그 편지는 우리 직원들의 가슴을 저리게 했던 것 같습니다.
충청남도 서해안 바닷가의 어느 어촌 마을.
"추운 날이다. 여기는 바닷가여서 바람이 몹시 차갑다. 올 겨울 방 하나에 다섯 식구가 딩굴면서 지금까지 보일러 기름 두 드럼을 갖고 살았다.
어떤 목사는 한 달에 세 드럼 쓴다는 말을 듣고 짠하게 생각했다.
지금 방안의 온도도 섭씨 10도 오래 앉아 있으니 발이 몹시 시려온다…."
올겨울 이곳 베이지역도 여느해에 비해 추웠던 겨울이었습니다.
지금 그 목회자에게 봄은 왔을까?
당시 편지의 내용이 계속 떠오릅니다.
"목회생활 햇수로 따지면 10년.
돌아보면 나야말로 하나님의 돌보심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니 고맙기 그지없다.
10년동안 받아본 사례는 일곱달. 합쳐서 칠십만원.
늘 가까이에 있는 양가에 짐된 생활을 많이 했다…"
10년동안 받은 사례가 한 달에 10만원.
그 것도 고작 일곱 번밖에 받아보질 못했다니….
말로만듣던 시골교회 젊은 목회자의 고뇌가 전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이같은 가난한 목회자의 현실이 더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날이가고 해가 갈수록 더욱 심해만지는 한국교회의 [빈익빈 부익부]현상때문이었습니다.
내노라하는 대형교회 담임 목회자가 유명한 어느 교회에 가서 1시간 정도 설교하고 받는 사례비가 천만원을 넘는다는 얘기도 들었으니까요.
양극의 극단적인 것만을 비교하는 같아 뭣합니다만 영혼을 살찌우는 대가치고는 좀 심했다는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가난한 목회자로부터 받은 편지에는 찌든 가난 얘기보다는 감사의 마음이 넘쳐나 있었다는데 놀랐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런 생활을 살아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어려움과 돌보심을 알 수 있었을까?
지금 앞길은 험해도 걸어온 길은 온통 은총이니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만하다…"
뿐만아니라 사랑도 담겨있었습니다.
"엊그제 위암수술을 받고 두달가량 입원했던 교회 할머니를 양로원에 모셔다 주었다.
가까이서 돌보지 못해서 미안하고 속이 답답하다. 잠을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 할머니를 생각하니 할머니도 지금 나처럼 낯선 곳에서 잠 못이루고 있을 거라고 짐작하니 눈물이 났다…"
하긴 이 젊은 목회자의 고뇌 못지않은 여타 목회자들의 고뇌가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교계 소식을 많이 다루다보니 정말 눈물나는 사연이 첩첩히 쌓여졌습니다.
비록 돈이 넉넉하지 못하고, 목회 여건이 풍족하지 못해서 힘들고 어렵고 고독하겠지만 이 목회자의 마음엔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계셨고, 나눔의 마음과 사랑이 충만했습니다.
또 한편으론 어느 누구 못지 않은 부자였다고도 생각됩니다.
그러면서도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것은 한번쯤 꼭 그곳을 방문해 보겠다는 나와 우리직원들이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더구나 그 편지를 받았을 때가 얼었던 대동강물이 풀리고 겨우내 긴 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들이 몸을 내민다는 우수·경칩, 바로 이시기였기에 이맘때면 그때 그 사연이 더욱 생생합니다.
한국에는 꽃샘추위가 다시 시작된다는 소식입니다.
지금도 보일러기름을 맘껏 때지 못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 없이 지내고 계실 젊은 목회자를 생각하면 빨리 꽃샘추위가 물러가길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감사와 사랑이 넘쳐나는 그 가난한 젊은 목회자의 마음에는 이미 화사한 봄이 찾아와 있을 거라는 위안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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