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부사람들
▶ 첫 만화방, 처 다방, 첫 24시간오픈 식당...
가멸 富에 날 生-’부자로 태어났다’는 이름을 가진 박부생씨는 남가주 한인업계에서 숱한 기록을 갖고 있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첫 죽 전문식당’ ‘첫 24시간 식당영업’ ‘첫 숯불 바비큐 도입’ ‘첫 만화방 오픈’ ‘첫 한국식 다방 개업’ 등등 그가 남긴 기록은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 그가 6개월여의 준비작업 끝에 이 달말 오픈하는 숯불집 동부 분점의 업주로 동부사람이 됐다.
그가 이름대로 부를 타고났던 것은 아니다. 1971년 처가식구 초청으로 이민 왔으나 미국생활에 채 적응도 하기 전 이혼을 당했다. 주유소에서 시간당 1달러35센트를 받으며 일하다가 ‘주한 미군으로 나가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35세 연령제한에서 4개월이 모자라는 나이에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포트 잭슨 신병훈련소에 입소했다. 중대장까지 ‘파파상’이라 불렀을 정도로 늙은(?) 나이에 받는 훈련이 이만저만 힘든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한미군 파병의 꿈’을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러나 어느 토요일 오후 PX에서 만난 한 한인 하사관은 박씨의 ‘야심’을 듣더니 실소를 금치 못했다. 주한미군 좋던 시절은 다 옛날 이야기며 냉장고 TV등 큰 물건은 장교들이 다 해먹고 사병들은 기껏해야 담배, 양주 빼내 파는 것이 고작인데 그 것으로는 술값 감당하기도 어렵다고 귀띔하더라는 것이다. 결국 4개월만에 LA로 돌아왔다.
베벌리힐스의 미국 식당을 거쳐 지금의 해밀턴 호텔 자리에 있던 미네스 식당에서 매니저로 일하다가 재혼을 했는데 나이 40이 다돼 가정까지 꾸린 터에 이뤄놓은 것이 없는 처지가 한심스러워 맥주 6팩을 사들고 그리피스팍에 올라가 번민 끝에 탄생한 것이 ‘산’이었다. 8가와 베렌도 손바닥만한 가게에 탁자 4개를 놓고 산을 개업한 것이 1979년. 처음에는 쌍화탕등 차 종류만을 팔다가 콩나물국, 미역국, 북어국 등 술꾼들을 겨냥한 메뉴를 추가했다. 큰 식당에서 팔지 않는 독특한 메뉴로 승부를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손님이 줄을 섰다. 이른 아침, 늦은 밤 찾는 고객이 늘자 24시간 영업을 하면서 잣죽, 전복죽, 깨죽 등을 팔기 시작했다.
가게가 너무 좁아 물건을 놔둘 창고용으로 식당 인근에 다른 가게를 렌트 했는데 물건을 넣고도 남는 공간에 만화방을 차렸다. 한국에 나가 만화와 무협소설을 저울로 달아 100만원어치를 사왔다. 당시 환율로 따져 1,000달러를 투자한 셈이었는데 컨테이너 한대 분량이나 됐다. 바둑판 2개와 함께 가져다가 만화방 문을 열었더니 하루 매상이 200~300달러가 올랐다.
그렇게 번 돈으로 지금의 8가 숯불집을 차린 것이 1983년. 역시 성업을 이루었는데 멕시코 무역관을 통해 멕시코에서 숯을 제조하는 회사를 찾아냈다.
LA다방의 원조인 8가와 옥스포드의 여왕봉 다방을 처음 연 사람도 그다. 웨스턴과 7가 현 가든 스윗 호텔 자리에 데니스 레스토랑이 있었다. 타운 내 한인들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그 곳에 가서 입가심 커피를 했는데 거기에 힌트를 얻어 여왕봉을 오픈했다.
박 사장은 사업 성공의 비결을 ‘사람을 믿는 것’이라고 말한다. 종업원은 의심하고 감시하는 주인 밑에서보다는 믿고 맡겨 주는 주인 밑에서 열심히 일하는 법이라는 것이 박 사장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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