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좋은 영화를 봤다. "아름다운 마음(Beautiful Mind)"이라는 영화다. 프린스턴 대학의 천재수학자 존 내쉬(John Nash)의 삶을 러셀 크로의 뛰어난 성격묘사로 그려낸 작품이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수학적 논리로 이해하고 풀어가는 존 내쉬는 21세의 나이에 "비협력 게임(non-cooperative games)"이라는 논문으로 아담 스미스의 이론을 뒤집고 경제학에 지대한 공헌을 할만큼 천재이다. 하지만 그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착각하는 심각한 정신장애를 일생동안 겪는다. 프린스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가상의 룸 메이트를 만나면서 시작된 그의 정신장애는 국방성의 가상인물을 만들어 내면서 그의 삶을 완전히 파멸시켜 버린다. 평생 암호를 해독하고 암호체계를 파괴시키며 핵무기 개발에 관련된 비밀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착각의 강박관념으로 모든 시간과 신경을 소모한다. 결국 정신병원에 실려가 치료를 받지만 가상인물의 환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자신의 모든 의지를 동원해서 너무나 생생한 현실처럼 등장하는 가상인물들을 물리치려고 애쓰는 모습이 눈물겹다. 끝까지 옆에서 지켜주는 아내의 사랑을 힘입어 환영들과 싸우면서 자신의 삶을 회복해 간다. 마침내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게 되는 인간승리의 드라마이다.
이 영화를 만든 존 하워드 감독의 시선은 참 따스하다. 물론 영화적 구성과 감동을 위해서 이겠지만 하워드감독은 존 내쉬의 부정적이고 정신병적인 실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지 않았다. 그의 메시아적 과대망상증이나, 외계인과의 접속을 시도하는 허무맹랑성, 혹은 그의 양성애적 경향등을 부각시키기보다는 그의 아픔과 그의 고뇌, 그리고 치유를 위한 의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번 이혼을 했다가 다시 결합한 사실과는 달리 부인 엘리샤도 끝까지 남편을 포기하지 않고 돌보는 현숙하고 헌신적인 부인으로 나온다. 사실이지만 사실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 주는 사진작가의 작품처럼 감독은 존 내쉬의 일생을 참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그려준다. 내가 특별히 도전과 영감을 받은 것은 존 내쉬가 끝까지 환영들로부터 해방되는 완전한 치유를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학문적 성취를 극대화할 수 있었던 의지적 힘을 보여준 데 있다.
노벨상을 받고 나오는 수상식장에서도 평생 따라다니던 세 환영들이 집요하게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동요하지 않는다. 그저 편안하게 그들을 바라볼 뿐 반발이나 두려움도 나타내지 않고 절망하지도 않는다. 평생 떨쳐버리지는 못했지만 보듬고 살기는 배운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이것이 치료받지 못했지만 열매맺을 수 있는 삶의 비결이었다.
우리 삶에는 많은 상처들과 아픈 기억들이 아물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의 현실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치료받기를 원하지만 웬일인지 오랫동안 치료되지 않는 상처나 질병들이 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숙명처럼 짊어져야 할 짐들도 있다. 각자 자기 몫의 십자가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들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인 바울과 같은 사람에게 평생 따라다녔던 육체의 가시와 같은 것들이 우리들에게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열매맺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교훈이며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다. 어차피 떨쳐버릴 수 없다면 보듬어 안고 가는 것이다. 더 이상 괴로워하지도 고민하지도 말고 짊어진 채로 가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후회와 좌절과 탄식대신에 문제와의 화해를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단점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는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 원리는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존 내쉬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지만 평생 환영들과의 만남을 피하지 못했던 것처럼 피하고 싶은 사람들과의 어쩔 수 없는 만남이 있는 것이 인생이다. 어쩌겠는가. 어딜 가든 그런 사람들이 없을 수 있을까. 또한 인생에는 이미 결정된 관계들이 있다. 우리들의 싫고 좋고의 감정과 상관없이 결코 취소될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는 관계들이 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그렇고 부부의 관계도 그렇다. 그 외에도 절대적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정말로 소중하게 여겨야 할 많은 관계들이 있다. 소중한 것을 소중한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치유이며 회복이다. 부대끼면서 사는 것을 배워가노라면 불편했던 사람들조차 편안해지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 때 우리 인생은 성숙의 향취를 더하게 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치료받지 못해도 열매맺을 수 있다고 간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우리도 바울이나 존 내쉬가 엮어낸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엮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아, 아름다운 마음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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