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 <권정희 편집위원>
SAT 세미나에 가면 가끔 소개되는 만화가 있다. 저승의 심판관 앞에서 한 남자가 당혹스런 표정으로 항의하는 장면이다.
“아니, SAT 점수가 여기에까지 기록되는 겁니까?”
살아 생전 일생동안의 행적에 대해서는 대충 자신이 있었던 것 같은 남자가 기록에 SAT 점수가 적힌 것을 보고는 갑자기 주눅 들어하는 모습이다. 죽어서까지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SAT 점수 - 시험 스트레스를 빗댄 만화이다.
20세기 중반의 미국인이 50년쯤 잠들었다가 지금 깨어난다면 무엇이 그 사람을 가장 놀라게 만들까? 컴퓨터, 인터넷, 셀룰라 폰 … 신기한 첨단 기기들에 우선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것은 SAT라는 시험점수를 놓고 대학 지망생들이 울고 웃고 하는 이상한 현상일 것이라고 SAT 전문가들은 농담을 한다.
입시생들이 SAT 때문에 밤잠을 못자고 학원을 몇 군데씩 다니는 과열 현상은 SAT의 아버지, 칼 브리검도 상상 못했을 일이라는 것이다.
SAT가 미국에서 처음 실시된 것은 1926년이었다. 프린스턴대학 심리학과의 브리검교수가 고안해 육군과 해군에서 장교 선발용으로 이용되었다.
군대에서 실시되던 시험을 대학에 도입하고 지금처럼 보편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제임스 브라이언트 코넌트 하버드대학 총장이었다. 1933년 총장이 된 그는 하버드와 같은 명문대학이 보스턴 일대 부유층 자제들의 전유물로 바뀌는 세태를 걱정했다.
미 전국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을 뿐 재능있는 청소년들이 많을 텐데 그들을 찾아 양성할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다가 도입한 것이 표준 시험제도였다. 교실에서 배운 내용이 아니라 타고난 재능을 테스트해 우수학생들을 선발하자는 취지였다.
현재 SAT가 학과 공부 내용보다는 적성검사 성격의 시험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 데는 그런 태생적 배경이 있다. 대학의 문을 재능있는 젊은이들에게 열어서 그들이 사회적 지도층에 편입되게 함으로써 기존의 계급을 타파하려는 것이 코넌트 총장의 꿈이었다.
칼리지 보드가 SAT 시험내용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학부모들이 긴장하고 있다. 개정여부는 6월에 결정될 예정이지만 SAT에 대한 비판이 최근 몇 년 사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어떻게든 변화는 있을 전망이다.
작문등이 추가돼 한인학생들에게 불리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최대 관심사이지만 그래도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어디 가나 소수계인 한인등 아시안이 단 한군데, 대학캠퍼스에서만은 기를 펼수 있는 것은 SAT 같은 표준시험제 덕분이라는 사실이다. 코넌트 총장에게 감사할 일이다. <권정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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