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를 정말로 사랑했던 적이 있었죠.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것은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워싱턴주 타코마에 거주하는 제프 스트브테키는 아침 햇빛이 안개를 겨우 이겨내는 창 밖을 내다보면서 10년 전의 LA를 회상했다. 4·29 폭동 당시 웨스턴 애비뉴와 베니스 블러버드가 만나는 웨스트 아담스 지역에 거주하던 제프는 오랜 세월 서로 터놓고 지내며 커뮤니티 활동에 함께 참여하던 이웃들이 한순간에 폭도로 돌변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필이면 맨해턴 방문중 9·11테러가 터져 아비규환의 현장을 직접 체험했다는 제프는 "이제까지 44년을 살아오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92년 4월29일만큼 무서웠던 적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9·11테러를 자행한 ‘악한’들이 일면식조차 없는 외국인들이었던데 비해 4·29 폭동의 폭도들은 서로 믿고 지내던 이웃들이었기에 충격과 공포감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제프는 TV를 통해 불길을 앞세운 폭동의 광기가 사우스 센트럴에서 자신의 거주지역으로 북상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집 앞에는 지역 갱단원들이 진을 치고 인근 전기제품점 업주와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동성애 파트너인 본 레이크가 경찰에 신고전화를 걸려다 벽에 튕긴 유탄에 맞아 경미한 상처를 입었을 때까지만 해도 제프는 "앞으로 재미있는 경험담이 되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창문을 통해 무차별 약탈에 가담한 이웃들이 전리품을 들고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급작스레 마음의 여유를 잃었다. 약탈자들은 레이크가 주도한 이웃 정화 프로그램을 통해 인도에 200그루 이상의 목련나무를 심고 함께 갱 낙서를 지우던 다정한 이웃사촌들이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곰살궂게 굴던 ‘친구’들이 트럭과 수레까지 동원해 안면이 있는 주변 상점을 "싹쓸이"하는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그의 집 앞에 있는 전기제품점은 15∼20분만에 완전히 털렸다. 낯익은 ‘폭도’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는 모습을 보며 제프는 끝없는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저들이 우리까지 죽이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어제의 이웃들은 마치 악마가 든 것처럼 달라져 있었다.
제프와 레이크는 주방위군이 배치되고 질서가 돌아온 후에 다시 이웃들과 함께 거리 정화작업을 주도, 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미 웨스트 아담스를 떠난 상태였다. 폭 동직후부터 타주로 옮길 작정을 했지만 집을 사겠다는 임자가 나타나지 않아 자리 지킴을 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는 4년 후 시세보다 10만달러나 낮은 가격에 집을 처분하고 부랴부랴 타코마로 떠났다. .
타코마로 이주한 이래 제프는 "웨스트 아담스에 비해 이웃 간의 접촉이 적다"며 줄곧 LA를 그리워했다. 하지만 그의 뇌리에는 10년 전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그에게 LA는 그립지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우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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