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계 부채액수가 국내 총생산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IMF 사태 이전의 50%선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70% 이상으로 봇물 터지듯 늘어난 배경을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여러 경제 변수 가운데서 극심한 격동기를 제외하고는 소비처럼 안정된 변수도 드물다. 투자는 외부 여건이나 다른 경제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순식간에 비등점과 결빙점을 왕래한다. 그러나 먹고사는 기본 활동인 소비는 개개인의 수입수준에 비례한다.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각자 쓰임새가 정해진다.
소비가 소득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경제학을 운위하기 전에 생활의 기본자세에 속한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급변한 한국의 소비패턴, 특히 주어진 소득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소비는 근본적으로 변화된 사회환경이 아니면 불가능할 수준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어느 때든 빚잔치는 북창동 술 파티처럼 허무하게 끝나게 되어있다.
한국에서 크레딧 카드 부채와 금융기관을 통한 소비자 빚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원인은 수출 일변도에서 건전한 내수 육성을 위한 정부 당국의 의도적인 정책변환도 중요한 요인이지만 그 보다는 서민들의 소비철학 변화가 더 근원적인 원인일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적인 측면만 보기보다는 사회학적 접근법에서 소비의 급작스런 변동의 힘을 찾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국의 중·하층에 속하는 서민들(한국인 대다수)에게는 경제개발이 이루어져온 지난 40년 동안 은행문턱은 넘어가 볼 수도 없을 만큼 높았기 때문에 은행 대부와 아예 담을 쌓고 살아왔다. 한 세대가 넘는 동안 은행이 특수층의 주머니 구실만 해왔을 뿐 일반 대중의 수요충족을 철저히 외면해온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요즘은 크레딧 카드를 말하기가 무섭게 발행해 준다. 온갖 금융기관이 앞다퉈 카드를 권장하며 매체들도 카드는 의당 몇 개씩 갖고 있어야 현대인인 것처럼 요란하게 광고한다. 이런 일들이 전에는 없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서민을 개같이 부리고 개 같은 생활을 강요하면서 특권층 사이에서는 거액의 뇌물수수가 공공연히 자행됐었다. 특권층의 소비 행태는 옛 왕족 못지 않게 호사스러운 반면 서민계급은 저축이 미덕이라는 주입교육을 신봉하고 자본형성에 이바지해왔다.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청난 소비행태는 부패한 사회 지도층과 대기업 위주의 금융정책에 대한 서민들의 분노 표출로 봐야 옳을 것 같다. 내 돈이 아닌 남의 돈(금융기관에서 얻은 빚)을 평생 처음 쓰면서 맛보는 스릴 때문에 빚이라는 덫에 걸리는 것도 모르고 빠져드는, 차라리 순진한 현상이다.
이런 주장을 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첫째, 부채상환 능력도 없으면서 1999년도에는 10조원 미만이던 크레딧 카드 거래액수가 불과 2년 뒤인 2001년엔 300% 이상 폭증한 40조원을 넘었고 크레딧 카드를 이용한 현금 인출액도 1999년에는 4천억원 미만이었으나 2년 새에 5배 이상 폭발적인 성장세를 나타냈다. 둘째, 신용대란의 주범인 일부 가계가 부채탕감을 요구할 만큼 철면피적인 사회로 악화되고 있다. 이 같은 수법은 재벌들이 걸핏하면 해오던 버릇을 본 딴 것뿐이다. 죄의식을 못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은 서민이 권리를 찾을 때라고 강변한다.
국가적인 개인 워크아웃이 등장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셋째, 큰 빚을 지고 있는 연령층이 책임을 느끼기에는 다소 이른 20대나 10대가 아니다. 책임감을 충분히 알만한 30~4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신용불량자의 80%가 넘는다. 넷째, 소비에서 외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차지했다. 이것도 4년 전에는 9%에 불과했었다.
불량기업은 그들대로 공적자금 같은 나랏돈은‘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사고방식이 절대적이다. 국민 혈세는 우선 먹고 쓰고 보자는 몸에 밴 습벽 때문에 책임경영이나 시장경제의 룰에 따른 공정 정신과는 처음부터 정반대로 달리면서 살아왔다.
이 같은 경제환경 속에서는 경제위기를 다시 맞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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