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끝나고 승자와 패자가 가려졌다. 이들이 벌여온‘말의 성찬’도 당연히 끝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후보자들의 연설은 온통 장미 빛이다. 그 사람을 찍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듯 싶다. 좋은 연설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마력을 지닌 듯 하다.
연설은 불붙는 논리라는 말이 있다. 불길이 활활 타오르려면 땔감이 있어야 하듯이 연설도 소재와 감동적 동작이 있어야 불처럼 타올라 빛을 발한다고 로마의 역사가인 타시투스가 일찍이 갈파했다. 훌륭한 연설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서 감동을 준다.
훌륭한 연설의 첫 조건은 간결이다. 장황한 연설을 듣기 좋아할 청중은 세상에 없다. 민주주의의 정의로 자주 인용되는‘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를 설파한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1863년 11월 19일)은 당시엔‘5분 연설’이라는 비아냥을 받았지만 지금은 한국을 포함한 각국 교과서에 수록되는 불후의 명 연설로 꼽힌다.
링컨은“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건국이념을 강조한 뒤 남북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는 죽은 병사들이 목숨과 바꾸며 지킨 목적에 더 헌신할 것을 다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 목적이 바로‘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를 지상에서 소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그는 정리했다.
링컨의 연설은 짧았지만 그 영향은 천파만파로 번졌다. 20세기엔 레닌의 좌익 전위당 이론과 결합해 수많은 독재정권을 낳았다.‘인민에 의한’을 지나치게 내세운 정치는 대중의 변덕과 이기주의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으로 타락했다.‘인민의’정부는 사기성이 농후했다. 특히‘인민을 위한’을 강조한 정치는‘수호자 주의’로 불리는 엘리트 독재로 변질됐다.
링컨의 연설이 수식적이라면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사는 직설적인 명 연설이다. 그는 1961년 1월 20일 눈 내리는 의사당 광장의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인지를 물어주시오(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라고 강조했다. 그는 2년 뒤인 63년 이 달 22일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카 퍼레이드 중 링컨과 마찬가지로 암살자의 흉탄에 쓰러졌다.
그 뒤 얼마 안돼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나에겐 꿈이 있다”는 명 연설이 나왔다. 그의 연설은 인종차별 반대운동의 경전이 됐고 끝내 그에게 노벨 평화상을 안겨줬지만 그 역시 암살 당했다. 2차 대전 중 독일의 침공에서 영국을 건진 윈스턴 처칠 수상은 “내가 조국에 바칠 것이라고는 눈물과 땀밖에 없다”고 비장하게 연설해 공포와 좌절에 빠진 국민을 일으켜 세웠다.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달 말 시애틀에 들러 연설하고 간 뒤 일각에서 그의 연설내용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모양이다. 한국이 나은 명 연설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DJ는 45분간 연설하며 청중으로부터 박수도 받았다. 나이가 많은데도 그의 언변은 여전하다며 찬사를 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감동적 내용보다 아쉬운 점이 많았다는 사람도 있다. 필자와 가까운 자리에서 연설을 들은 한 인사는 대통령이‘싹수’라는 소리까지 해서 실망했다고 말했다.
연말이 다가오면 한인사회 각 단체들이 정기총회나 송구영신 행사준비에 분주하고 그런 행사장에는 으레 연설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언론의 자유는 연방헌법 제 12조에 보장돼 있으니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지만 될 수 있으면 짧고‘싹수’있는 연설들을 듣고 싶다.
그런 연설을 할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라는 영국 속담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만있으면 50점은 받는다”는 말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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