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2시간 거리의 리들리는 초기 이민 역사 현장이다.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밭에 온 이민자들이 새로운 꿈을 안고 찾아온 것이 미국 본토였다. 그러나 이들은 특별한 기술이 없어 대부분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도시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흘러 흘러 프레즈노 농장지대까지 오게 된다. 이들은 다시 과일농장에서 고된 노동으로 살아가게 된다. 차만재 교수의 조사 발표에 의하면 이들 이민 선조의 묘소는 189기로 나타났다. 이들의 묘비를 조사한 결과 특이한 것은 이들의 3분의 2가 남성으로 독신으로 살다가 이국 땅에 묻힌 것으로 나타났다. 1954년부터 리들리에 거주해왔던 박부영씨(작고)에 의하면 농장 근로자로 일하니 한국에서 배우자를 데려 올 재정 형편도 못되고 그렇다하여 영어도 잘못해 미국 여성과 결혼하기도 어려워 대부분 독신으로 합숙생활을 했었다고 증언한바 있다.
이와같이 농장노동자로 고달픈 삶을 살면서도 큰 위안처가 됐던 한인 교회당 두곳이 있었다. 이민 선조들이 세운 한인교회당은 리들리와 다뉴바 두곳에 있었다. 이들교회는 초기이민자들의 마음의 안식처이자 조국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었다. 3.1독립운동 퍼레이드가 열리고 1919년에는 대한여자구국단이 출범 했다. 그러나 이들한인교회는 교인이 줄어 들자 타민족 손으로 넘었갔다가 소리 없이 사라져 가고 있다. 다뉴바교회당이 1958년 2월 4일 먼저 문을 닫았다. 그러다가 2년전에 교회당은 완전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다뉴바 경찰서가 들어서 교회로서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우리의 무관심속에 이민 역사에 중요성을 지닌 유적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 지난 8월 ‘리들리 한국인 이민역사보존연구회’가 결성됐다. 보존연구회는 한인 초기 이민사의 중요한 현존 유적중 하나인 ‘리들리 교회당 매입,보존 사업을 가장 시급한 사업으로 추진을 발표했다. 보존연구회는 현재 히스패닉 소유인 옛 교회당을 매입, 중가주 한인 이민사 박물관을 설치하여 후세들에게 선조들의 정신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교육의 도장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크게 환영 할 일이고 꼭 이루어 져야 할 일이다.
그러나 지난30일 오클랜드에서 열린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 상항지역 사업회에 참석한 리들리역사보존연구회 관계자들은 교회당 매입 추진 상황 설명요구에는 구체적인 진전이 없는듯 대답을 회피했다. 대신 리들리교회당에서 선열들에 대한 ‘추모위령제’계획을 밝혔다. 사업의 우선 순위를 놓고 볼 때 위령제 보다는 교회당 구입이 급선무이다. 타민족교회당에서 위령제를 지내기 보다 교회당을 하루 빨리 구입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먼저간 선조들도 남의 교회당에서 행사를 갖는 것을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리들리역사보존연구회는 일의 우선 순위를 잘 가려 하루 빨리 교회당 구입에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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