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묻힌 이름없는 이민자 이름 찾아 줘야죠
“사실은 아무 것도 안하고 가려고 했어요”
이자경씨(58)는 인터뷰 도중 자꾸 이 말을 되풀이했다. 뭘 안하고 가려했다는 것일까?
극작가로서, 예술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인생과 그 발자국을 남기는 일에 대해 그녀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허무주의로 살아온 그의 화두는 삶의 의미 없음, 그리하여 ‘아무 것도 안하고 가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역사는 정직해야 하니까, 이민사는 해야되는 거니까, 누군가 사실을 발굴해서 써야 되잖아요”
이자경씨는 우리의 역사에서 완전히 잊혀졌던 멕시코 유카탄의 한인 후예들을 처음 찾아낸 사람이며, 중가주 리들리의 초기 한인이민자들, 무명 애국지사들의 발자취를 찾아내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한 사람이다.
“역사 속에 묻힌 사람들을 찾아내 정리하다 보니 범위가 자꾸 넓어집니다. 미주 이민사는 하와이 중심의 이민사는 있어도 본토 위주의 역사는 잘 남아있지 않고, 정치적인 것만 치우치다보니 사람들의 삶이 빠져 있어요. 지난 추석에 있었던 애국선열 합동 추모제는 160명의 이름 없는 애국자들을 추모하는 행사였습니다”
안하고 가려던 일을 왜 하는지, 그 시작은 아이덴티티 위기에서 비롯됐다.
“이민 1세로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의 의문이 있었습니다. 1988년 배낭 하나 메고 멕시코로 갔지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간 것 같았어요. 그 곳 유카탄에서 멕시코인들의 피가 섞인 꼬레아노들, 너무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모국을 잃고 살아가는 멕시코 이민자들의 후예를 만났습니다. 가슴이 아파서 자꾸 가다보니 10년 동안 발굴한 자료가 쌓였고 어느 날 방에 틀어박혀 6개월 동안 글을 썼습니다”
그렇게 나온 것이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 98년 발간된 이 책은 한국의 문화관광부 추천도서로 선정됐고 국내외에서 비극의 멕시코 이민사가 재조명되는 계기가 됐다. 2005년이면 멕시코 이민 100주년을 맞는다는 이씨는 그동안 새로 발굴한 자료들을 보강해 ‘멕시코 이민 100년사’를 새로 펴낼 계획이다.
중가주 이민사는 3년 전 처음 발굴을 시작했다. 프레스노와 리들리, 다뉴바의 농장에서 일하면서 조국으로 독립자금을 보냈던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발자취는 후손들의 이주와 무관심으로 거의 사라졌지만 희미하나마 그 흔적이 여기 저기서 발견됐다.
“1905년부터 노동조선인 여관이 만들어져 노동으로 살아가는 남성들에게 숙식을 제공했지요. 120도의 뙤약볕 아래 일하면서도 1919년 다뉴바에서 대한여자애국단이 창단됐고 1920년에는 삼일절 기념행사도 가졌습니다. 이름 없는 이민자들의 이름을 찾아주는 일이 점점 커져가네요”
오는 14일 이자경씨는 ‘갤러리 닷스리’(Gallery.3)에서 강좌를 열고 이런 이야기들을 할 예정이다. 이민자로서 우리의 시작과 그 역사를 찾는 일의 중요성에 관해. 좀 딱딱하고 부담스러울지 모르지만 우리는 좀 일부러라도 이런 이야기를 듣고, 역사의식을 갖는 게 좋겠다고 생각된다.
한국서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로 활동했던 이자경씨는 77년 이민 왔으며 80년대 LA 문화계에 많은 자극을 남겼던 행위연극 ‘곡’ 시리즈(I과 II, IV)를 잇달아 발표했다. 소설로는 ‘육손이’와 ‘핼로윈 파티’가 호평 받았으며 미발표 희곡으로 폭동 10주년을 맞아 쓴 ‘블랙 아메리카’가 있다.
Gallery.3의 주소와 전화번호는 11421 E. Carson St. # J. Lakewood, 90715, (562)653-1166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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