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안부를 묻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요.
잊지 않고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이 어딘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릅니다. 이 낯설은 미국땅 낯선 사람들 속에 묻혀 살면서, 사람이 목마른 이 팍팍한 세상에 누군가 잊지 않고 나의 안부를 물어 준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가슴 떨리는 일인지 모릅니다.
사람에게는 사람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며 e-메일보다는 이쁜 한지에 깨알같은 글씨로 꾸욱꾸욱 눌러 쓴 편지를 곱게 접어 보내오고, 생일 때면 잊지 않고 종이로 만든 귀걸이며, 목걸이, 작은 보석함을 직접 만들어 이 먼 곳까지 보내던 사랑스런 후배 정희가 가을 햇살이 겨울바람에 밀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듯 그렇게 죽음에 밀려 가버렸다는군요.
며칠 전 첫 눈오는 날, 전화로 "언니, 여기 지금 서울엔 하얀 눈이 와요. 하얀 함박눈이 펑펑 와요"하며 좋아서 소녀처럼 까르르 넘어가던 그가 죽었다니....
하얀 눈오는 이 추운 겨울에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그 이쁘고 착한 정희가 저 세상으로 같다는군요. 종로에서 분식집하며 홀몸으로 대학까지 공부시킨 어머니가 내 걸려서 시집도 안가고 어머니 모시고 두 모녀가 서로 그렇게 의지하며 살았는데, 그 홀어머니가 내 마음에 걸려서 편하게 저 세상으로 가지도 못하고 종로 그 허름한 분식집을 넋으로 남아 맴돌고 있을 정희와, 홀몸으로 장사하시며 한 점 혈육인 그 딸 뒷바라지하시느라 고생 많으셨던 어머니, 그 귀한 자식 먼저 보내고 얼마나 황망하셨을지, 하 기막혀 눈물조차 못 흘리셨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고 눈앞이 자꾸 흐려집니다.
지지거리는 스텐드 불빛만 칙칙하게 달라붙어 있는 방, 깊은 강물처럼 적막이 흐르고 달빛과 바람마저 그 적막 속으로 잠기고, 기막힌 침묵만이 내 위안을 찾아 술을 꺼내 놓고는
정희가 죽었다니, 정희가 죽었다니....
그래 어차피 인생이란 가는 것 며칠이면 또 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며 살아갈 것인데 아무렴 어떠랴. 문득, 내가 죽어 누군가가 이렇게 삶을 푸념해 댈 것을 떠올리니 인생이란 것이 참 쓸쓸하고 허망하구나.
정희야, 편하게 잘 가거라. 어머니 걱정하지 말고. 그래도 산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간단다.
꽃상여 타고 그대 잘 가라. / 세상의 모진 꿈만 꾸다 가는 그대 /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 어이어이 큰 눈물을 땅에 뿌리고 / 그대 잘 가라 꽃상여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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