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특파원 코너
▶ 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 이탈리아 북부 휴양도시 산 레모에 영국과 프랑스 외교관이 만나 몰락한 오스만 투르크의 영토를 어떻게 나눠먹을지를 논의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제국주의의 선봉에 서서 해외 식민지 개척에 나섰고, 미국은 전통적인 고립주의를 채택하고 있었다. 미국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 동로마제국을 붕괴시킨 700년 역사의 투르크 제국 영토를 분할 통치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그때 미국에 메소포타미아의 유전에 관심을 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스탠더드 오일 오브 뉴저지의 A. C. 베드포드 회장이었다. 당시 미국 석유산업을 독점했던 존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독과점방지법에 의해 수십개로 쪼개졌고, 뉴저지주에 본부를 둔 스탠더드 오일의 한 갈래가 오늘날 엑슨-모빌의 원조다.
베드포드 회장은 산 레모에서 벌어진 영-불 협상의 결과를 친구로부터 전해듣고 국무부를 찾아가 메소포타미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석유를 장악한 자가 세계를 차지할 것이며, 세계최대의 석유매장량을 확보한 메소포타미아 문제 해결에 미국이 적극 참여할 것”을 주장했다.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미 국무부는 중동 문제를 “경제적으로 중요한 사안”으로 취급해나갔다.
베드포드가 주목한 그 일대에 지금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독립국가가 건설됐고, 그가 예언했듯이 메소포타미아는 세계 석유분쟁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베드포드 회장은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메소포타미아의 ‘전투적 부족’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한바 있다. 오늘날 사담 후세인을 그는 오래전에 정확히 예측한 것이다.
석유는 산업 활동 뿐아니라 개인의 일상 생활에도 꼭 필요한 존재다.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20세기는 물론 21세기에도 진행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은 말의 힘을 이용한 기마병과 기름을 원료로 하는 전차의 싸움에서 기름의 우위가 인정된 전쟁이었고, 2차 대전에 앞서 미국은 일본에 석유 금수조치를 단행하면서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다. 지난 90~91년의 걸프전은 서방세계가 쿠웨이트 석유를 보호하기 위해 침략자 이라크를 축출하는 전쟁이었다.
지금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경고하고 있는 이라크 공격은 세계 2위 매장량을 보유한 이라크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러시아가 산악지대의 소국 체첸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그곳을 지나는 송유관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중국이 신쟝성 분리주의자를 탄압하는 것은 그 지역에서 석유가 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지난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송유관 관통을 반대한 탈레반 정권을 축출한 것은 석유의 이해가 개입됐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국제석유시장은 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엑슨, 모빌, 셸, BP, 걸프, 텍사코, 소칼등 미국과 유럽의 7대 메이저에 의해 장악됐다. 그러던 것이 중동 산유국들이 자국 유전을 국유화하면서 오일 쇼크가 벌어졌고, 석유수출국기구(OPEC)라는 국제카르텔에 의해 공급자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무장 해제 요구로 벌써부터 석유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한때 배럴당 30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유가는 이달들어 15% 가량 하락, 배럴당 24~26 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전쟁이 날 가능성이 큰데 석유값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석유시장에선 미국의 세계 석유시장 주도권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이라크는 걸프전 이전에 하루에 500만 배럴을 생산, 사우디 아라비아에 버금가는 산유국이었으나, 패전 이후 이라크 국민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선에서 하루 150만 배럴로 생산이 제한되고 있다.
미국의 공격 또는 압력에 의해 후세인이 축출되고, 그후 이라크에 대한 석유 금수조치가 풀리면 국제유가는 배럴당 20달러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국제석유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산유국들은 앞으로 몇 달후에 있을 공급과잉에 따른 유가 하락에 대비, 쿼터량을 확보하기 위해 최근 하루에 100만 배럴 이상 증산하고, 그래서 유가가 하락하고 있다. 국제 석유시장에선 이미 미국이 이라크를 제압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