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원래 방향이 묘연해서 실로 가까이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혹자는 가까이 있다하여 세수하면서 코만지는 것 만큼 쉽게 알 수 있다고도 하고 혹자는 먼 곳에 있다하여 도를 찾아 나서기도 하지만 문득 막힘을 당하여 주저앉고 마는 까닭이 바로 이 도무지 알 수 없는 방향성 때문이다. 길이 끊어져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절망의 곳에 이르러 지나온 긴 여로를 뒤돌아보고 한번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정든 옛 사람이 기뻐 할만한 그런 사람이다.
소백산 처마 밑에 바짝 붙어있는 희방사를 한번 찾고 보면 확연히 길 끊어짐의 기쁨을 느낄 수 있으니 왜 옛 사람들이 기쁠 ‘희’자에 방향 ‘방’자 절 ‘사’자를 붙여서 희방사라고 이름했는지를 짐작할 것이다. 이 희방사에서는 잎을 모두 벗어 던진 참나무 사이로 소백산의 정상을 바라볼 수가 있는데 바로 지척지간에 있는 눈 덮인 그 웅장한 봉오리가 곧 내 이마로 쏟아져 내릴 듯한 긴장감이 일품이다. 골짜기의 빈 나뭇가지를 흔들어 울리며 거침없이 올라오는 엄청난 바람도 소백산의 기상인 듯하며 앞으로 있을 본격적인 겨울 추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리라. 소백산은 힘센 산이다. 소백산이 그 주위에 거느리고 있는 높은 봉오리들은 전부 기골이 장대하고 위엄이 서려있어 힘센 산세를 금방 느낄 수 있다. 스스로를 낮추어 적을 소자 소백산이라고 한 것을 잘못 깔보고 없수이 여겼던 나는 단박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강원도 영월 쪽에서나 경상북도 풍기 쪽에서나 모두 오십여리를 올라와야 이 골짝에 이를 수 있는 죽령험로는 대단한 고산 준령임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아득한 산 아래에 벌어져 있는 풍기 땅은 아름답고 비옥하여 그 풍경과 산물이 천하 답이다. 풍기에서 바로 이어져 있는 영주와 안동분지는 인재를 비오듯이 쏟아낸 우리나라 최대의 인재배출 고장으로써 주위에 산물이 저렇게 풍부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일 터이다.
요즘은 소백산 뜨락에 온천까지 발견되어 소백산 둘레의 사람들이 따뜻한 온천까지 즐길 수 있는 것이 금상첨화라 할 것이다. 이 희방사 터에는 처음부터 절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뗏집(초옥) 한 칸이 있어서 길막힌 곳에서 길 찾는 수행자들이 겨우 한 사람씩이나 한철씩 살다가고 한 공간이었는데 경주 부자 한 사람이 그의 딸을 위해 희방사를 창건하게 됐다고 한다.
어느 눈덮인 겨울날 호랑이 한 마리가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 있는 스님앞에 엎드려 입을 한껏 벌린 채 목구멍의 고통을 호소하더란다. 필경 목에 큰 물건이 걸린 듯 하여 스님은 손을 넣어 그것을 끄집어 내어보니 아뿔사 그것은 여인의 머리에 꽂은 비녀가 아닌가. 눈 속의 배고픔을 참지 못한 호랑이가 어느집 아낙네를 식사로 삼은 모양이다. 생명의 법칙과 인간의 법칙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자연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많이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한 충격속에 있는 스님에게 며칠 후 그 호랑이가 한 처자를 내려놓고 왔다. 기절을 하고 혼이 나간 처녀를 겨울 석달 동안 구둘막에 눕혀두고 갖은 간호의 정성을 다하여 살려내고는 눈길이 뚤리자 신라당시의 수도인 경주로 내려가 그 처녀를 그의 부모에게 되돌려 주었다고 한다.
스님의 이 은공을 기려 경주 부자는 스님이 공부하던 뗏집 터에 절을 세운 것이 지금의 희방사라고 하니 호랑이가 횡행하던 천년전의 소백산 언저리를 상상하기에 족한 이야기라 할 것이다.
풍기에서 산자락을 돌아 저 멀리 반대편의 부석에 이르면 그 유명한 부석사가 있다. 부석사의 큰 법당에는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데 한량없는 목숨과 끝없는 광명을 지니고 계시므로 무량수 무량광 부처님이므로 무량전이라고 부른다. 서쪽의 극락정토를 바라보고자 하는 중생들의 마음을 헤아려 무량수전의 아미타 부처님은 동쪽을 향해 앉아 있다. 합장을 하고 부처님을 향해서면 누구든 자연히 서쪽을 향해 있도록 한 의상스님의 자비를 천년 뒤의 참배객을 고마워 해 본다. 사람의 하는 일은 모름지기 몇천년 후에라도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그런 일을 해야겠구나 하는 허튼 생각도 하면서.
법당앞의 마당으로 내려와 돌담위에 서 본다. 그 높은 돌담을 축대로 쌓아늘려 천 년을 버틴다는 것도 감탄할 일이지만 눈 앞에 벌어지는 수천개의 낮은 산봉오리들이 펼치고 있는 파노라마는 우리의 눈이 바라볼 수 있는 즐거움 중에서도 최상의 것 중에 하나이리라. 누가 산과 바다가 떨어져 있다고 했는가. 저 산봉오리의 파노라마는 꼭 망망대해의 파도같이만 보인다. 한 시간이나 넘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싫지가 않은 장관이다.
의상스님은 이 뜰앞에 서서 천년전에 이미 화엄세계를 염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염은 이어져 또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인간의 세상이 바로 화장세계가 될 날도 있으리라. 소백산 자락을 돌아나오며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 내외가 이곳에서 자랐다는 생각을 하염없이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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