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 본국 대기업 기획실에 근무하는 친구가 이곳으로 출장온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라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반가운 인사가 오간 후, 친구가 대뜸 한다는 소리가 "실리콘밸리를 보고싶다"는 것이다.
기자가 "보여줄 곳이 없다"고 대답하자 그 친구는 대뜸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실리콘밸리는 따로 있는 거리가 아니고, IT 산업이 발달한 산호세를 중심으로 한 베이지역 전체"라고 말해도 언뜻 이해하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당시 대부분의 본국인들은 한국의 ‘테헤란 밸리’나 ‘대덕밸리’처럼 하이테크나 닷캄사들이 밀집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튼 당시 많은 본국인들은 실리콘밸리를 관광의 명소처럼 방문해 근사한 배경을 뒤에 두고 사진 한 장이라도 찍고 가기를 원했다.
이처럼 실리콘밸리는 전세계 산업의 중심이었고 모든 국가에서 이를 본뜬 산업기지를 건설하려는 모델이었다.
■"실리콘밸리는 일반 교포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피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30년에 가깝도록 베이지역에서 살고 있는 한 올드타이머의 불평이다.
이분의 말을 빌리자면, 하이테크산업이 베이지역으로 몰리기 전인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한결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고 한다.
기후 좋고, 세계적인 관광자원을 갖고 있는 문화도시에서 산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고 한다.
그러나 갑자기 ‘닷캄’ 광풍이 불면서 살벌하게(?) 변했다는 것이 이분의 불만이다.
자고 일어나면 아파트 렌트비가 오르고, 곧 허물어질 듯 낡은 집도 50-60만달러는 기본이고, 웬만한 지역에서는 1백만달러를 ‘뉘 집 개 이름처럼’ 부르는 시대가 오고 말았단다.
게다가 "하루에 백만장자가 20명씩 탄생한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스톡 옵션’으로 20대 닷캄사 주인들이 부자가 되었다.
하이테크 산업이 집중되면서 본국의 주재원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자 산호세 일대의 한인사회도 계층적 갈등이 시작됐다.
"룸살롱에서 하룻저녁에 수천달러씩 돈을 뿌린다"는 소문이 나고 마켓과 식당에서 여유를 부리는 본국인들과는 달리 토박이 교포들은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꼈다.
당시 실리콘밸리의 호황은 일반 한인은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렇듯 영화를 누렸던 실리콘밸리가 이제는 불황 확산의 주인공 노릇을 하고 있다.
닷캄의 거품이 꺼지면서 시작된 불황은 나스닥 주식의 폭락을 가져왔다. 기업마다 수천명씩 해고가 늘면서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실업률은 전국 평균인 5%대는 물론 가주의 6%를 훨씬 상회하는 9%대에 가깝게 올랐다.
5일 발표된 UCLA 앤더슨연구소의 경기전망은 실리콘밸리가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는 주범인 것으로 분석됐다.
내년부터 미국 전체의 경기회복이 본격화되지만 베이지역만은 2004년에야 회복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유는 기업들의 IT 장치에 대한 설비투자가 2003년말에야 집중되고, 따라서 IT산업의 의존도가 높은 베이지역은 경기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천덕꾸러기로 변한 실리콘밸리를 보면서 "일반인에게는 일생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거품경기의 허망함이 다시 떠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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