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침체에 허덕이는 경제를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한인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는 그 어느때보다 경제에 쏠려있다. 그만큼 지난 2년여 동안 지속돼 온 불황으로 내핍을 겪고 있으며, 내일에 대한 불안감이 큰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정국의 수습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고, 전쟁에 대한 우려가 점점 깊어지면서 최근 반전 운동이 미국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평소 평화운동을 펼쳐온 반전 시민단체나 노동조합 등에 그치지 않고 교회와 업계, 9·11 테러 희생자유족단체, 걸프전 참가 군인단체 등 다양한 부류가 동참하고 있다.
대부분 70대 할머니들로 구성된 ‘전쟁을 반대하는 어머니들’과 5천만명의 신자가 있는 36개 개신교·정교 교파 연합체인 전국교회협의회 등이 가톨릭 주교회의의 반전성명 채택을 지지하면서 이라크 침공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채택했다. 또한 대학 교수들과 부시 대통령이 소속된 감리교를 포함한 보수적 교파들까지 가세했으며, 미국내 70여개의 단체가 ‘평화를 위한 단결’(unitedforpeace.org)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이라크 침공 반대를 위한 네트워크를 형성, 반전운동이 도도한 물결을 이루고 있다.
전쟁,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각각의 극단적 이기심이 충돌, 각 나라의 문화와 인간의 정서와 가치관이 파괴되고 있다. 이것은 자기중심적 아상(我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자기중심성은 에고이즘과 이기주의의 근본이 되는 것이며 자본주의의 동력이 되기도 했고 경쟁과 대립을 야기시킨 근본사고가 되어왔다.
우리는 현재의 시국을 보면서 사회와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얼마나 파괴되고 있는지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며, 따라서 전쟁이 가져오는 폐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반전운동은 인간과 사회의 모든 문제를 포괄하는 의미에서 생명운동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다윈은 모든 자연은 생존경쟁,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와 법칙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계몽주의 철학과 산업혁명이 결합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논리가 되었고 이러한 논리는 경쟁을 인간사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쟁은 이기고 지는 논리다. 이러한 논리속에 강자는 자신의 승리를 합리화하기 위한 이념 조작으로 자연법칙을 사회법칙으로 전개하기도 하고, 대립을 보다 강화시키기 위해 적(敵)과 아(我)를 구분하고, 우리편과 상대편을 가르고, 천사와 악마를 가르며 선한싸움이라는 포장하에 전쟁을 도발하기도 한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적을 규정하게 된다. 그것은 대립과 전쟁의 논리이며 결국은 자신마저 파괴하는 가치관인 것이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죽임의 논리에서 ‘네가 살아야 나도 살수 있다’는 상생의 논리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것은 개인과 개인사이뿐아니라 남성과 여성, 큰 단체와 작은 단체, 자연과 인간의 관계까지 이러한 상생의 논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것과의 공존, 차이를 인정하고 나아가 그것을 오히려 소중한 것으로 인식하며 공통점을 확대시키며 차이점을 소중히 하는 것이 바로 평화를 구하는 자세일 것이다. 세계 각 나라와 문명간의 대화와 평화는 그러한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가 바로 대화다. 헌데도 대화를 하지 못하고 상대를 자기 기준에서 비하하고 힘으로 응징하려는 것은 정글의 짐승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대화를 하지 못한데서야 어찌 고등 동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회 구성원으로 더불어 산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돌아보면 우리 주변에도, 또 한인사회에도 이 대화의 문화가 대단히 미흡하다는 것은 우리가 쉽게 공감하는 터다. 모두가 급하고 이해심이 부족하며 넉넉하고 후덕함을 찾아보기 힘든데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경제가 한치 앞을 전망할 수 없을 정도로 혼미한 현재의 난국은 바로 이 ‘대화’가 결여돼 모든 것이 경색돼버린 까닭이라고도 볼 수 있다. 죽기를 각오하고 덤비는 사람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잣대로 모든 것을 규정한다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가만히 있겠는가. 지금 한국에서 전국적으로 일고있는 반미운동도 같은 맥락이다. 상대를 인정치 않으려는 오만함에서 더 큰 저항을 부른 것이다.
어떻게 전 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행해지는 테러를 방지할 수 있단말인가. 생각을 바꿔야 모든 난국을 타개할 수 있으며 서로 살 수 있다. 모두에게 득이 되는 ‘윈윈’ 작전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대 테러전은 결코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온갖 불이익을 계속 감내할 바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올 뿐이다. 개인의 사생활까지 규제가 날로 심해지고 생활 전반에 걸쳐 우리가 겪고 있는 불안감이나 불편은 이미 인내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전쟁터에 서 있다는 생생한 증거다. 세상은 결코 몇몇 사람의 독불장군의 것이 아니고 60억 인류가 모두 주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상생’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며, 이는 마음을 연 진실한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편집·취재부장/ej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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