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에 있을 때는 산을 볼 수가 없다
산을 보려면 산 밖으로 나와야 한다."
이 역설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간 이번 보름간의 고국나들이에서 내게 다시없는 진리로 느껴졌어요.
인천공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향해 모든 출국 수속을 마치고 몇 개의 관문을 통과하고 비행기에 오를 때 게이트와 기체 사이의 긴 통로에는 아무리 뒤돌아보아도 보이지 않는 텅 빈 거리가 있었어요. 그 아득하고 막막한 거리요....
승객들이 모두 타고 비행기의 비상구가 서서히 닫히며, 보내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을, 함께 호흡하던 공기 마저 마지막으로 싸늘하게 차단시키고 시커먼 바퀴가 활주로를 긁으며 비행기가 비상하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 운해 위로 올라 와 있네요.
기차 꽁무니가 안 보일 때까지 차창 밖으로 고개 내밀고 손을 흔들던 그 슬픈 기적과 함께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이 점점점 점으로 사라져 가는, 기차의 여운 같은 것을 도저히 느낄 수 없었어요.
아무리 목 메이는 이별이라 해도 747 최신형 제트 비행기의 소음과 속도 앞에서 그 어떠한 시정(詩情)도 없이 기체의 느낌만큼 딱딱하고 차거운 몰인정한 이별만이 공항에는 있네요.
12시간의 긴 여행 도중에 있어서도 무미건조하기는 매한가지예요. 기차나 배로 하는 여행은 계절과 함께 산과 들과 강을, 바다를 경험하고 가슴에 품고 갈 수 있지만 3만피트가 넘는 상공에서는 흰 구름과 하늘만 보며 산도들도 강도 바다도 계절도 생략한 채 막막한 하늘과 흰 구름과 가끔 비행기의 차가운 날개를 보며, 희랍 신화에 나오는 이칼로스를 떠올릴뿐이예요.
그 이칼로스가 백랍으로 날개를 달아 태양에 접근하였다가 날개가 녹아 이카리아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는 신화를 떠올리며, 그 시퍼런 바다로 비행기가 곤두박질 치는 꿈을 꾸다 눈을 뜨니 샌프란시스코 공항 도착 20분전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주섬 주섬 물건 챙겨 돌아온 샌프란시스코는 떠날 때처럼 또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이곳에 와서야 그리운이들 더욱 그리워지고 보고싶은 마음과 반겨준 고마움이 더욱 더 간절하게 하나 둘 보이고 고국의 그 살겹던 산과 들, 그리고 강과 바다가 느껴지네요.
아, 지금 책상 위로 거미 한 마리가 어디선가 기어 나와 거미줄을 치고 있네요.
거미, 자신의 체액으로 자신이 살집을 짓는 저 거미는 저렇게 허공 속에서도 자신의 세계에 매달려서 살 수 있는데, 늘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길에 동행인 있어도 없는 나는 아직도 낯선 이 허공에 또 다시 나의 언어로 내가 매달려 살집을 잘 지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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