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에 한 번 인터넷 한국 신문 사이트들에 들어가 보면 계속 미국을 성토하는 촛불 시위 기사가 나온다. 기사 아래에는 독자들이 올린 의견들이 몇 줄씩 나와 있다. 그 전에도 지면을 빌어 말한 바 있지만, 한국의 의견 올리기 내용은 욕설이 반 이상이다. 거칠고 무례한 단어를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반대 의견을 개진할 수가 있는데도, 누가 더 자극적이고 기발한 욕설을 하는가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인터넷에서의 예절은 이 글의 초점이 아니다.
어쩌다가 가뭄에 콩 나듯 미국 측을 조금이라도 두둔하거나 한국 측도 반성할 점이 있다는 내용의 글이 나오는데, 그랬다 하면 곧장 ‘친미’ ‘매국노’라고 몰매를 맞는 것을 본다. 이것을 보고 나는 우려하게 되고 반미가 아니면 친미라는 식의 흑백 논리에 아연해진다. 한 번은 모 신문의 논설위원이 반미를 할 게 아니라 용미를 해야 한다고 했다가 그게 친미와 다를 게 뭐냐고 또 한 동안 호되게 당하는 걸 봤다.
한국에서 오래 살았기에 한국인이 다 되었다고 밝힌 한 미국인 독자는 ‘무조건 반미는 위험하다’는 제목으로, 최근의 가중되는 반미 감정과 북한의 핵 개발 시인 등이 미국인 투자가들의 불안을 초래해서 한국 시장에서 발을 빼도록 하게 만들지 모른다고 하면서 정말 한국인 입장에서 걱정을 하는 글을 쓴 것도 보았다.
거의 매일 매스 미디어와 인터넷에서 성조기와 부시 대통령 화형식과 초등학생 어린 소녀들이 손가락을 베어 뚝뚝 뜯는 피로 ‘미국 죽어!’ 라는 글씨를 쓰는 것을 보면서 미국 내에서 반한 감정이 일어날 수가 있고 잠재적 투자가들이 한국보다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될 것도 염려했다. 경제전문가인 그녀에 의하면 한국 내 미국 자본의 비율은 30%를 웃돈다고 한다. 정신이 번쩍 드는 얘기였다.
여중생 사망 사건과 군사 재판 결과의 정당성에 대해서 나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말할 자격이 없다. 그 결과가 부당하다면 마땅히 항의를 해야 하고 현 SOFA도 개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좋든 나쁘든 경제를 비롯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의 대미 의존도가 너무도 높기 때문에, 반미를 외치고 시위에 나서기 전에 이 미국인이 제시한 대(對)한국 투자 위축의 위험성과 경제적 영향 같은 것에 대해 한 번 골똘히 생각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미국에서 한국 상품들을 사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큰 타격을 받을까. 억울하고 불공평하더라도 실정이 이런 것이다. 반미 무드에 덩달아 제임스 본드 영화
안 보기 운동도 번지고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제임스 본드는 영국 영화이지 미국 영화가 아니다. 우리는 좀 더 장기적이고 이성적으로 국가적 손익을 따져 보고 행동을 해야하고, 사실을 바로 알고 행동해야 하고, 어느 정도에서 선을 그을 것인지 알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냉철한 분석과 국가적 손익을 계산한 후 미국에 저항하고 비판하면서, 그와 동시에 우리는 내적으로 힘을 기르고 정의를 실현하고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미든 반미든 용미든 간에 결국 우리는 미국에 비해 입지가 약하기 때문에 여러 갈등과 마찰들이 생기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 성장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외국인들이 아직도 한국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부정부패와 법이 통하지 않는 사회, 교육의 난맥상과 교통지옥, 고아 수출 등의 나쁜 면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지역감정 문제를 봐도 달라진 게 없다. 대선 결과 한 지역에서 92-95%가 한 후보에게 표를 찍은 것을 보라. 이 기사 밑에는 한 술 더 떠서 “왜 한 후보에게 몰표가 가면 안 되느냐?" 라고 물은 독자의 의견이 나와 있다. (정직해서 좋다고 할까!) 반미에 핏대를 올리는 것만큼 이런 국내의 문제점들을 개선하고 해소시키는 데 정력을 쏟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도 역시 친미라는 말을 들을 지 모르지만.
사실 나는 친미가 아닌 중립이고, 반미보다는 용미가 현명하다고 믿지만, 반미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든 자신의 의사를 결정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반미를 해야겠으면 냉정하게 좀 더 알고 반미하자는 얘기다. 세계화를 부르짖던 때가 언제인데 미국과 한국을 포함해서 세계 각국에 번지는 속 좁은 민족주의는 나를 무척 우려하게 만든다.
한국에서는 반미 데모의 뉴스, 미국에서는 한꺼번에 이락과 북한을 상대로 두 가지의 전쟁도 불사한다는 국방장관의 호언이 나오니, 두 나라가 다 소중한 내게는 몹시 힘든 나날이 되고 있다. 아무리 밉고 불공평해도 결국 우리는 모든 다른 나라들과 등지지 않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생산적으로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어떻게 양쪽이 다 이기는 (win-win) 결과를 이끌어 낼까를 고심하고 연구해서 양쪽이 다 패하는 (lose-lose) 참담한 파국을 피해야만 한다.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애팔래치안대 정보기술 시스템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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