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것은 아름답다. 새해아침 열어보는 새가계부의 첫장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진취적인 희망, 가슴벅찬 설레임, 아름다운 기대, 좋은 예감과 감동을 만끽한다. 새로 시작되는 건 좋은 일이다.
새해아침 이것저것 계획을 세운다. 올 한해동안 챙겨야 할 가족의 대소사들, 각종 기념일들을 조목조목 적어 넣었다. 하고 싶은 일들도 하나 둘 적어 넣었다. 미리 계획을 세운다고 다 이뤄지는게 아니란걸 알면서도 거의 습관적으로 적어 넣는다. 기분좋고 행복한 일들만 많이 생기길 바라면서 ‘새것’을 향한 희망을 품어본다.
나목(裸木)을 보았다. 지난 연말 연휴에 레익타호로 올라가는길, 눈비맞고 서있는 나목(裸木)을 보았다. 초여름의 잎이 무성한 나무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초라하거나 썰렁함보다 그 질긴 생명력을 붙들고 서서 벌써부터 벅찬 환희의 봄을 품고 있었다. 몇해동안이나 풍상(風霜)을 겪으면서도 굽히지 않는 소신과 심지 곧은 의지의 힘으로 버티고 서있는 나목(裸木)의 형상을 보았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무엇인가 꽉차고 완벽하게 채워지는것이 삶의 행복인것처럼 추구하도록 길들여져 왔다. 그래서 새해아침이면 의례히 많은 계획들과 꿈으로 노트 빡빡이 채우곤 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삶의 여백이 필요하다고 체득(體得)하기 시작했다. 항상 긍정적이고 진보적인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지만 그것의 반대면도 헤아릴 줄 아는 좀더 원숙한 사고가 필요한 것 같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마음으로 세월이 내게줄 예기치 않은 작은상처에 대해서도 미리 여분을 남겨놓는게 좋을 듯 싶다.
비어있는 마음을 생각한다. 인간의 세계에서 소위 ‘힘’으로 존재되어온 권력, 명예, 재력을 겸비하고도 끊임없이 그무엇인가에 목말라하고 굶주려하는건 그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또다른 그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인것 같다. 꽉차서 넘치는 것 보다는 조금은 비어있고 부족한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이 새로운 아침 다시 생각하게 된다. 비어있는 마음만큼 강한 것은 없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다 덮고 감쌀수 있는 해탈(解脫)과 체념(諦念)의 경지에 올라 오직 인간의 본질에 충실한 소신과 심지 곧은 의지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올 한해도 내역사속에는 크고작은 많은 사건들이 일어 날 것이다. 때로는 덮어버리고 때로는 감싸안으며 그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는 마음으로, 미리 준비된 빈마음으로 흔들림없이 착실하게 살아 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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