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카 스렌스탐의 PGA투어 도전은 반세기이상이 지나는 동안 잊혀졌던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여장부 베이브 자하리아스의 이름을 다시 세인의 관심 속으로 끌어올렸다.
결혼전 이름이 밀드리드 디드릭슨이었던 자하리아스는 모든 전문가들이 20세기는 물론 역사상 최고의 스포츠 여걸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인물.
1956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숨질 때까지 자하리아스가 쌓은 커리어는 그녀가 역사상 그 어느 여성도 따라갈 수 없는 체육인이었음을 말해준다. PGA투어에 출전한 첫 여성으로 지난 1945년 로스앤젤레스오픈에서 36홀 컷오프를 통과한 경력이 바로 소렌스탐의 PGA투어 도전과 연결돼 새삼 스팟라잇을 받고 있으나 자하리아스의 스포츠 커리어는 골프가 아니라 야구와 소프트볼, 육상에서 시작됐다.
못하는 것이 없었던 만능 스포츠우먼이었던 자하리아스는 1932년 LA 올림픽에서 투창과 80M 허들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하이점프에서 은메달을 따낸 육상 수퍼스타였다. 또 본명보다 더 유명한 ‘베이브’라는 이름이 바로 홈런왕 베이브 루스 같다고 붙여진 애칭이라는 사실은 그녀가 야구에서도 엄청난 재능을 과시했음을 말해준다.
스포츠기자의 권유로 골프에 입문한 자하리아스는 US여자오픈 3회 우승을 포함, 생애통산 프로로 41승을 따냈고 LPGA투어 창립자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1938년 스폰서 초청으로 출전한 로스앤젤레스오픈에서 컷 탈락한 자하리아스는 7년간 칼을 갈아 1945년 이 대회에 컴백, 남자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치른 예선을 통과한 뒤 당당히 36홀 컷오프를 통과했으나 3라운드에서 79타를 치는 바람에 54홀 컷오프에 걸렸으나 같은 해 출전한 3개 PGA투어 대회에서 모두 36홀 컷을 통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사망하기 3년전인 1953년에는 암 수술을 받고도 다음해 LPGA 투어에 복귀, US여자오픈을 비롯한 5개 대회 우승컵을 휩쓰는 불굴의 투지를 보이기도 했다. AP 선정 ‘올해의 최우수 여자선수’를 6번이나 차지했고 역시 AP가 뽑은 ‘20세기 최고의 스포츠우먼’도 그녀의 몫이었다.
<김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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