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건설적 긴장(Constructive Tension)이란 말이 자주 쓰인다. 긴장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기분좋은 의미를 주는 단어는 아니다. 항상 긴장 가운데 산다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그러나 건설적이라는 말이 추가됨으로 긴장감(?)은 순화된다. 건설적이라는 말은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의미가 스며있다.
선생과 학생, 부모와 자식, 목사와 교인, 대통령과 국민과의 관계등에서도 건설적 긴장 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긴장 관계가 없을 때, 권한이 한쪽으로 집중되게 되면, 독재가 되고 이러한 독점적 권한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하고, 정도에 벗어나는 일들을 하고, 건설적 관계는 적대적 관계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권한의 불균형이 분쟁의 불씨를 제공한다.
그러면 건설적 긴장 관계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 그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적절한 권한의 배분이 이루어질 때 건설적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의 학생 시절 한국에서 어떤 교수들은 정당한 이유 없이 수업을 취소하곤 하였다. 요즈음은 한국 대학들도 국제 경쟁 시대를 맞이하여 대학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고, 옛날과 달리 함부로 수업을 취소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곳 미국에서는 학생들도 교수의 수업을 평가하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수가 함부로 휴강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에서도 국민과 대통령의 권한이 삼권 분립과 선거라는 제도와 또한 시민 운동과 언론의 독립에 의하여 건설적 긴장 관계가 조성된 상황에서는 독재자가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계를 만들기 위하여 수많은 우리의 선배들이 피를 흘리고 고통을 당하였다. 그러한 희생이 없었다면 현재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도 태어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민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교회에서도 교인과 목사가 바람직한 제도를 확립하여 건설적 긴장 관계를 유지할 때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는 교인과 목회자들의 부단한 노력이 따라야 한다. 기윤실의 건강교회 운동은 교회의 권한을 균형있게 배분하여 분쟁을 미리 방지하고 나아가서는 교회가 사회를 위하여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자는 운동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윤리 운동은 우리의 양심에 대한 건설적 긴장 관계를 유지하자는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서로 조심하며 살자는 것이 윤리 운동인데,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허 성 규
(캘스테이트 샌버나디노 회계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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