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대전 소재동에 살적에, 동내 아주머니들께서는 나를, 반은 작난으로, 디린님(도련님)이라 불렀었다. 아마도 어린 내가 외출할 때는 꼭 한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우리 어머님에 대한 예우였는지, 알 수 없다. 이웃 아주머니들께서는, 음식이나 바느질에 관해서나, 길흉사의 예의 법도 등에 관해서, 우리 어머님께 여쭈어 보러 자주 우리집을 드나드셨었다.
소재동 집은, 대문을 들어 서면, 넓은 앞 마당 중앙에 작은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 한 가운데에 손바닥만한 동산이 있었는데, 그 동산에는 오래된 매화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그리고, 동쪽 화단과 남쪽 화단에는 각종 꽃나무들이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각종 꽃을 피웠었는데, 특히 가을이면 온 집안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국화꽃이 만발했었다. 뒷곁에는 장독대 옆에 석류나무, 오른쪽 담 밑에는 대추 나무와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고, 비탈진 북쪽 담까지는 대나무가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감나무에는 해마다 감이 어찌나 많이 열렸었는지, 주로 삭혀 먹거나 곶감을 만들거나 했었지만, 더러는, 바느질 배우러 오는 이들의 옷감에 들이는 좋은 물감이 되기도 했었다.
시장에서 파는 가루로 된 여러 가지 고운 물감들이 있었지만, 어머님께서는, 감, 치자, 산수유, 쪽풀, 심지어 황토에 이르기까지 천연 물감만을 쓰셨던 것 같다. 가끔 어머님과 함께 황토를 파러 가거나, 목척다리 넘어 풀밭에 쪽풀을 베러 가기도 했었다. 바느질 배우러 오는 이들이 간혹 시장에서 파는 물감을 사오면, 그것들을 쓰지 못하게 하시고, 천연 물감이 왜 좋은지, 공정은 어찌 되는지 누누히 설명하시곤 했었다. 바느질 배우러 오는 이들이, 그 보답으로, 간혹 난(蘭)을 들고 오기도 했었다. 어머님께서 워낙 난을 좋아 하셨기 때문이다. 귀한 음식이나 좋은 난을 갖여오면, 어머님께서는 화선지에다 난을 쳐서 보답 하셨다.
어머님께서는 남명 조식(曺植) 선생님의 후손 이심을 퍽 자랑스럽게 여기셨던 것 같았다. 선비의 도리에 관해서 엄격하리 만큼 열의가 있으셨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에게는, 지켜야 할 일들만 말씀 하셨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대문을 나설 때는 반드시 두루마기를 입을 것’, ‘누워 있는 사람을 절대로 타 넘지 말 것’, ‘여자는 누워있는 남자 머리맡으로 절대로 지나가지 말 것’ 등 행실에 관한 것, ‘미물이라도 함부로 죽이지 말 것이며, 특히 집안에 들어온 것은 들짐승이던 날짐승이던 절대로 잡지 말고 보내 줄 것’, ‘지나가는 과객을 절대로 박대하지 말 것’ , ‘나 먹을 것은 없어도 손님은 굶기지 말 것’ 등 박애에 관한 것, ‘손님이 오시면 내 집처럼 편안히 느끼도록 모실 것’, ‘남에게 가급적 싫은 소리는 삼가할 것’ 등 예의에 관한 것, 등등 시의 적절하게 들려 주시던 말씀들은 그 후 나의 인격 형성의 좌표가 되었다. 그리고, 일 배우러 오는 손님들에겐 유난히 선비정신을 강조 하셨던 것 같았다.
하루는 먼 일가 되시는 아주머니가 오셨었다.
"성님! 저 번에 가져왔던 그 옷감 도루 가져가야겠네요"
"왜 ? 아, 추석 때 입을 거라면서 ? 아직 스무 날이나 남았는데, 앞으로 열흘이면 될텐데, 왜?"
"삼성동 한복 집에서는 사흘이면 된다는디. . ., 물감도 고운 것도 많고. . . . ."
"자네, 이리 좀 앉게"
어머님께서는 일가 아주머니를 대청마루에 앉히시고, 차근차근 타 이르셨다.
"이보게! 시중에 파는 물감들은 우선 보기에는 고와 보여도, 쉬 날라가고 바래서 못쓰네, 또 아무 천에나 쓰는 것도 아니고. . . .그리고, 한복 집에서 다드미질 하는 것 봤나?"
"아-뉴-, 나보러 다듬이질 해 오란디유-"
"그 보게! 이제 물 드려 삶아서 재워 놓았는데, 내일 모래쯤 풀 먹이고 다듬이질하고 . . . 적어도 이렇게 세 번은 해야, 물도 않빠지고 천도 부드러워지고, 또 오래 가는 걸세. 옷감을 마를 때도, 옷을 지을 때도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정성을 다 해야 하네. 옷은 그 입은 사람의 인품을 말해주는 것이니, 옷에도 혼이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일세"
"네 ?"
"정성을 다 해야 한다 이 말일세"
"아, 네-, 그런디, 그 쪽물인가 뭔가는 검정색도 아니고 푸른색도 아니고, 나는 당채. . . "
"아무 소리 말고, 이번에 바느질이나 제대로 배워 가지고 가게. 한복집에 줄 돈 있으면, 서방님 입을 도포 감이나 떠 오게, 내가 만들어 줄 테니"
"도포는 또 뭔 도포래유-?"
"아, 지난번 시사 지낼 때 보니, 자네 서방님 두루마기도 않입고 왔데. 그리고, 한복집에서는 재봉틀로 두르르 박아 버리니, 몸매에 따라 박음질을 조정할 수가 있나. . . .,금박도 어울리지 않게 아무거나 갖다 붙이고. . ., 내, 이쁜 수도 놔 줄 테니, 내 시키는 대로 하게"
그 후에, 그 아주머니께서는 언제 옷을 만들어 가져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추석이 지나고 몇일 후에 그 아주머니께서 오셨다.
"우 와 - !"
내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흰 무명 적삼에 검정 치마, 아니면 기껏해야 소매를 걷어 부친 노랑 저고리에, 버선이 드러나 보이는 떨름한 치마 차림의 시골 아주머니가, 오늘은 귀부인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꼭 우리 어머님처럼, 동백기름을 바르고 곱게 빗은 쪽진 머리에 꽂혀 있는 옥비녀랑, 흰색 저고리에, 치마 색과 일치된 쪽 빛의 고름, 소매 끝, 그리고 섶에 박힌 금박이랑, 속 치마의 흰색이 은은함을 더해주는 쪽빛의 치렁치렁한 치마 단에 놓인 자수랑, 어느 모로 보나, 사대부 집 마님으로 보였다. 어머님께서 지어주신 옷을 입고, 주변으로부터 칭찬을 너무나 많이 들었다며, 어머님께 인사하러 왔던 것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나서, 이곳 달라스에 정착해 살고 있던 어느날, 나는 어느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내 눈을 의심하리 만큼, 놀라운 모습의 한 여인을 보게 되었다. 바로 50 여년 전, 한국의 대전 소재동에서 봤던, 일가 아주머니의 모습, 아니, 작고하신 어머님의 젊은 시절의 모습, 바로 그 모습 그대로 였다. 파마 머리의 사람만 바뀌었을 뿐, 그 저고리 그 치마 그대로 였다. 역시 그 모습에서 풍기는 품위는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아무리 옷이 날개라지만, 그만한 인품이 있어야 그런 옷을 입을 수 있다. 다른 여인들의 옷을 보면, 격에 어울리지 않는 색감도, 미싱자수로 무거우리 만큼 마구 수 놓은 치마도, 뒷단이 불룩 솟은 저고리도, 모두가 눈에 거슬렸다.
나는 그 여인에게 대강의 사연을 예기하고 나서, 누가 그 옷을 지었느냐고 물어 보았다. 수 년 전, 서울의 어느 한복집에서 만들었다며, 위치를 그려 주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우리 큰 아이 혼사 때 귀국하여 한복을 맞추려고 그 한복집을 찾아 나섰다. 그 집을 찾을 수 있을가 ? 찾는다 해도, 과연 그 옛날 그 방식대로 하고 있을가 ? 그 옛날이 그리워 진다. 각종 비리와 불법이 난무하는 사회. 어릴 때부터 고전을 가르치고, 대학 졸업 때 까운 대신 선비의 정장인 도포를 입게 하여, 우리의 빛나는 선비정신을 되 찾을 수는 없을가 ? 고위 직을 차지했던 소인배가 죄 짓고 감옥갈 때 한복은 왜 입는가 ? 우리의 선비복이 국제 무대에서 활개 치는 날이 보고싶다. 온갖 상념에 젖어 든 채, 아무리 살펴 봐도 그 한복집을 찾을 수가 없다.
전봇대에, 찢겨나간 한복집 선전 전단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이 근처 같은데, 도시 찾을 수가 없어서, 근처 세탁소에 가서 수소문 해 보았다.
"벌서 몇 년 전에 집 팔고 이사 갔어유, 저-기 저 8층 건물 있는 곳이 그 한복집 있던 자리유"
"어디로 갔는지 아시나요?"
"물루지유, 워디루 갔는지, 근데 그래가지고 장사가 되남유?’
"왜요?"
"아, 손님 비위를 적당히 맞춰 가면서 돈벌이에 치중 해야지, 그깐 전통이 밥 멕여 주나유"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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