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기호씨, 그 넥타이 멋져요. 넥타이만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 같네요."
"유미씨, 이 멋있는 사람의 얼굴은 안 보이고 넥타이만 보인다니 혹시 눈에 감기 기운이 있는 것 아니세요."
박 기호는 나이에 비해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다. 직장에서 야유회나 연말파티 진행은 독점을 하고 있다. 기호의 말솜씨나 몸짓, 손짓은 완전 프로 급이었다.
"그러니까 올드 아니세요."
옆 좌석의 김 용수가 커피를 찔끔찔끔 들이키다가 한 마디 거들었다. 노처녀의 날카로운 눈길이 건너간다.
"노처녀지만 넥타이 보는 안목은 있다고요. 용수씨 하나 사줘요?"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누구 거리로 쫓겨나는 꼴보고 싶으세요."
용수는 손을 흔들면서 커피를 마신다.
"기호씨. 이 넥타이 누가 골랐어요. 부인?"
"글세."
"그동안 매고 다니던 넥타이를 보면 부인이 이런 것은 사지 않았을 것 같네요. 기호씨 애인 생겼어요?"
"애인이라. 그럼 여자겠지?"
"요즘 가끔 늦게 집에 들어간다고 하셨는데 좀 이상한데요."
"왜. 유부남은 바람나면 안 된다는 법 조항이라도 있어요?"
"법 조항은 없지만 기호씨 같은 분이 바람나면 제2의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이 나죠. 사람은 한결 같아야지요."
"유미씨. 모르는 소리하지 마세요. 기호씨 옛날엔 바람둥이였습니다. 몰랐죠."
"기호씨 정말이세요?"
유미는 의아한 눈빛으로 기호를 쳐다본다.
"저 친구 오늘 점심값이 없는 모양이군. 유미씨 한테는 점심사도 자네한테는 점심 없어."
"그럼 폭로하죠."
"그래 전부 공개해봐. 하얀 종이에 하얀 글씨밖에 더 있어."
"기호씨. 그것은 무슨 말 이예요? 정말 비밀이 있는 것 같네요."
"누구는 말 한마디에 점심상이 제 발로 돌돌 굴러오고 있네."
"그러니까 남을 좀 칭찬해 보라구."
"네 그렇게 하죠. 그런데 저도 점심 먹으러 가도 되죠?"
"그것은 유미씨 한테 물어봐요."
기호는 저쪽 자기 책상으로 가 앉는다. 유미도 자기 책상으로 가면서 용수를 한번 힐긋 쳐다본다. 유미는 기호한테 관심이 많았다. 유부남이지만 언제나 오빠 같고 연인같이 자상한 사람이었다. 유미는 몇 번 기호의 가정 속으로 침입해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기호한테서 머리카락 하나 들어갈 틈이 생기지 않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처럼 해봤다. 아니 스물 번도 더 해봤다. 유미는 자기가 무슨 일에 도전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다 목적을 달성해 왔다. 공부도 열심히 해 미국 학생들도 잘못 들어가는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테니스 실력도 보통이 넘었다. 일을 맡으면 다른 사람들보다 정확하고 빨리 완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호씨와의 관계는 지금 완전 휴전 상태다. 언제 다시 틈을 보고 사랑의 화살을 쏟아 올릴지 모른다. 유미가 사랑을 성취하기엔 아직 부족한 그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 넥타이를 보고 유미의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질투의 불씨가 다시 일어나고 있다. 여자의 질투는 영원히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저 넥타이 부인이 사지는 안았을 것이다. 7년을 이곳에 근무했지만 한번도 저런 멋있고 야한 넥타이는 매고 온 적이 없었다. 저것은 분명 젊은 여자가 사줬을 것이다. 누구일까?’ 유미는 일이 잘 안 된다. 자꾸 시계만 쳐다본다. 지금 가서 물어볼까. 누구한테서 선물 받았는지. 유미는 가서 물어 본다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때마다 기호씨 앞으로 가지 못하고 화장실로, 용수한테 가서 알고 있는 일을 다시 불어보기만 했다. 오늘 따라 시간은 달팽이 걸음질 치고 있는 것 같았다. 유미가 기호한테 이렇게 관심을 두고 생각하는 마음의 백 분의 일 만이라도 다른 남자한테 쏟았다면 아마 결혼했을 것이다. 유미는 왜 유부남한테만 신경을 쓰고 있을까. 유미는 1.5세대로 여기서 학위까지 받았다. 유미의 미모나 실력을 볼 때 젊고 능력있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왜 결혼을 하지 않고 있을까? 유미의 속살에 무슨 흉터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기호씨를 좋아하는 것을 볼 때 그런 것은 없을 것 같아 보인다. 요즘 유행어로 골든 메달을 달고 싶은 것일까.
"자, 오늘 점심은 먹고 싶은 것 마음껏 주문해요."
유미는 아침때 보다 말이 없다.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새초롬해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기호나 용수는 묻지 않았다. 수시로 변화되는 노처녀의 감정을 누가 알까. 본인도 잘 모르는 일. 날씨가 더워 냉면을 주문했다.
"기호씨. 한 가지 묻겠는데 솔직히 대답해 주세요."
유미의 표정은 갑자기 굳어지면서 아주 심각해진다. 기호는 용수를 쳐다본다.
"네. 이야기하세요. 무슨 질문인지 모르지만 겁이 나는데요."
"정말 솔직한 답을 해줘야 해요."
"문제만 제시 하이소."
"기호씨. 그 넥타이 누구한테서 선물 받았죠?"
"이 넥타이." 기호는 넥타이를 만져본다.
"여자 한테서요. 왜요?"
"그 여자가 누구세요?"
유미의 질문에 용수는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유미의 눈빛이 점점 이상해져 간다. 저러다 식탁 테이블을 뒤집어 업을 것 같아 겁이 난다.
"유미씨."
그때 냉면이 나왔다.
"자. 시원한 냉면이나 먹읍시다."
"기호씨. 아직 저의 질문에 대답 안 하셨잖아요."
"유미씨가 한번 알아 맞추어 봐요."
"모르니까 물었잖아요. 빨리 답해 주세요."
"그렇게 궁금하세요?"
"네. 답을 안 해주시면 전 냉면 안 먹을 거 예요."
"아. 이것 큰일났네. 몰래 감추어 둔 애인까지 공개를 해야 합니까?"
"당근이죠."
냉면을 썩고있던 용수가 한마디 한다. 기호는 냉면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는다.
"유미씨. 저의 처제가 유럽에 여행 갔다 오면서 선물했습니다. 이제 됐어요?"
유미는 기호를 빤히 쳐다본다. 며칠 간 밥도 먹지 못한 사람같이 냉면을 입안으로 밀어 넣고 있다. ‘저렇게 먹다 소화제까지 사 달라고 하겠군.’ 기호는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사람은 때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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