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들은 불이 번개를 통해 처음 인류에 소개됐다고 한다.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는 불을 보면서 철학적인 영감을 얻었다. 형이상학(metaphysics)과 변증법(dialectics)의 시조로 일컫는 헤라클레이토스는 불 자체는 물질이 아니면서 물질을 다른 물질로 변화시키고 실재가 아니라 과정이라는데 특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불이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활동하는 것처럼 세상도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있다며 세상을 영원히 타는 불로 표현했다. 세상에서 변함 없는 것은 변화 뿐으로 만물이 불에서 일어나 다시 불로 소멸되는 순환은 영원히 반복된다는 뜻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다시 들어가 보아도 처음 들어갔을 때의 물은 이미 흘러가고 없다며 한번 들어간 강물에 두 번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모든 것이 일시적이며 지나간 것은 다시는 찾을 수 없다는 상실감과 향수의 염세주의 철학관 때문에 그는 ‘눈물의 철학자’라고 불렸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는 또 불에서 위로도 찾았다. 그는 불이 타는 만큼 꺼지듯이 세상은 한쪽 방향의 변화가 다른 방향의 변화로 균형을 유지해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빛과 어둠이 서로의 개념을 통해 정의되듯이 서로 대립되는 것들 사이에 관계가 있고 대립적인 관계 속에 갈등과 혼돈을 초월한 조화가 숨어 있다는 학설이다.
그는 이에 따라 모든 대립과 항쟁은 소멸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질서이며 모든 가치는 상대적으로 결정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에게 불은 세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창조의 원동력인 것이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불이 응축과 희박작용을 통해 불꽃 뿐 아니라 연료, 연기와 공기 등 다른 형태로 전화하는 만물의 근원이라고 믿기도 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같이 만물을 지배하는 법칙을 일컬어 로고스(이성)라고 불렀고 그에게 로고스는 변화를 상징하는 불이었다. ‘만물은 유전한다’(panta rhei)라는 명언으로 정리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은 변화에서 우주의 의미를 찾았다.
지난 2주간 남가주 산야를 덮친 화마는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아픈 상처와 충격을 남겼다. 3,500채의 주택과 75만에이커의 초목이 순식간에 재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자연 앞에서 초라해진 우리도 헤라클레이토스처럼 재난에서 위로를 찾아볼 수밖에 없다.
이집트 신화에는 불사조라는 새가 500년 또는 600년마다 스스로 향나무를 쌓아 올려 타죽은 후 재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전설이 있다.
비록 이번 산불로 황폐화된 마을들이 시련이 많을지라도 재에서 부활하는 불사조처럼 새로이 변화된 모습으로 다시 일어설 것으로 확신한다.
국제부 우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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