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사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요 사건입니다. 개인의 역사든 한 나라의 역사든 전세계의 역사든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역사의 사실을 잘못 기록할 수도 있고 기록이 누락되거나 유실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후환이 두려워서 기록할 때에 아예 내용을 빼거나 보태거나 다르게 기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사실은 사실 그대로 숨겨져 있습니다. 이 숨겨져 있는 역사의 사실과 진실은 숨겨진 채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고 하는 시간 위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발은 현재라고 하는 시간 위를 디디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미래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출발은 과거에 했으나 현재에서 미래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역사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바꾸어 나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현재와 미래는 과거의 역사의 사건과 사실은 바꿀 수 없으나 의미는 바꿀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와 미래가 역사의 의미를 재해석 한다는 것입니다.
미래는 내 이상대로 설계할 수가 있고 현재는 그 설계를 이루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열매를 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현재와 미래가 역사를 빛나게도 하고 추하게도 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로 베드로를 찾아갑니다. 수일 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베드로로서는 스스로 씻을 수 없는 수치와 실패였습니다. 이런 좌절을 안고 갈릴리로 내려왔습니다. 감히 예수님의 얼굴을 바로 쳐다 볼 수도 없는 부끄러운 처지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났던 이곳, 예수님이 나를 따라 오라고 할 때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부푼 꿈과 자신감과 의욕과 열정을 가지고 출발했던 첫 출발은 무능과 좌절로서 3년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다시 시작하자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베드로는 다시 출발했습니다. 실패와 좌절로 텅 비어 있는 베드로의 마음 속에는 그래도 지난 3년 동안의 역사가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얻은 교훈과 훈련, 실패를 통해서 먼저 자기자신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명이 무엇인지, 예수님을 따르고 섬긴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다시 시작했습니다. 실패한 과거가 그의 스승이 되고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변화된 그의 새로운 삶은 과거의 부끄러운 그의 실패의 역사를 오히려 아름답게 장식하는 장식품이 되었습니다.
미래가 과거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역사는 바꿀 수 없으나 그 의미와 해석은 바꿀 수 있습니다.
이순각 목사(워싱턴시온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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