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생일날 동서가 화분 하나를 사왔다. 싱싱한 이끼가 촉촉하게 덮여있는 멋진 돌 화분에 심겨져있는 호접란이다. 여섯 송이의 만개한 진분홍색 꽃이 튼실한 이파리 위에 우아하게 앉아있었다. 좋아 어쩔 줄 몰라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던 동서가 머쓱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형님, 그거 조화예요. 그렇잖아도 바쁘신데 진짜를 사다 드리면 신경 쓰실 것 같아서요. 깜빡 속으셨죠?” 세상에, 조화가 잘 만들어진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잠시 후 하경 사모님이 오셨다.
“사모님, 생일 축하해요. 이거...” 하며 건네주는 그 것, 약속을 했어도 이럴 수는 없을 터였다. 동서가 사온 것과 화분만 다르지 크기도 색깔도 너무 똑같은 호접란이다. 꽃송이의 숫자까지 똑같다. 이럴 수도 있구나.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그러나 두 번은 안 속으리라 맘먹고 선수를 쳤다.
“사모님, 아주 예뻐요. 근데 요즘은 조화 만드는 기술이 너무 좋아요. 그죠?”
사모님이 깜짝 놀라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에요. 무슨 말씀을. 이거 진짜예요.”
함께 있던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으이그, 뭐가 뭔지 모르겠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웃고 넘긴 그 일이 어리숙한 내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나 보다. 그 후로는 어디를 가든지 꽃이나 화분이 놓여있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안달이 났다. 냄새를 맡아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심지어는 손톱으로 긁어서라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밝혀내야만 속이 후련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강목사님 댁을 방문했다.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전에는 없던 화분 하나가 거실의 한켠에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영락없이 다가가 코를 들이밀고 킁킁거리고 있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한 음성이 들렸다.
“야, 그깟 나무, 진짜고 가짜인 것이 뭐 그리 대수냐? 그러는 너는, 진짜니? 가짜니?”
가짜와 거짓이 난무하다 못해 복제인간까지 만들어 내는 세상에 살고있는 나는 새삼스레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을까? 거짓이면 어떠냐고, 당장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두 얼굴을 갖는 것쯤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인데. 그럼에도 그런 세상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고 두려웠었나보다.
여러 날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조화에 물을 주는 실수를 한다. 하지만 더 이상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세상과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든 내 맘과 영의 눈이 욕심과 거짓에 흐려지지 않는 한, 진실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 한, 진리에 목숨건 아름다운 이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이고, 진짜가 산을 이루는 멋진 날을 분명히 보게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 날을 위해 정신차리고 늘 깨어있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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