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주말마다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바깥에 있으면 올라오는 지열 때문에 숨까지 막힐 지경이다. 요즘에야 대부분 집에서 선풍기는 물론이요 에어컨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에 부채를 사용하는 일은 더욱 없어졌을 것이다. 게다가 요즘 아이들 중에 선풍기나 에어컨 놔두고 부채 바람 쐬겠다는 아이들도 없을 것이고 이 바쁜 생활 속에 아이들에게 굳이 부채로 시원하게 해주겠다는 부모님도 흔히 계시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후텁지근하게 더운 여름날, 어머니가 살랑살랑 부쳐주는 손부채는 제아무리 강력한 에어컨보다 훨씬 더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어찌 손부채의 바람이 강력한 기계 모터의 힘보다 강할 수 있겠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손부채가 더 시원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부채로 부채질을 해주시는 어머니에게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에, 그래서 금방 스르르 잠들 수가 있어서 더욱 시원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우리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은 시원하게 낮잠을 재우려는 마음에서 팔 아픈 것도 마다 않고 열심히 손부채로 설렁설렁 더위를 몰아내 주셨다. 선풍기가 있더라도 선풍기 바람을 직접 쐬면 몸에 안 좋을까봐, 혹은 배탈이나 감기에 쉽게 걸릴까봐 가능한 한 부채를 이용하셨던 그 마음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지 않을까.
어제 어머니날을 보내면서 유독 손부채가 많이 생각났던 까닭은 바로 손부채가 상징하는 부모의 정성과 노고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부채질처럼 느리게, 뻐근한 손목 아픔도 함께 하면서, 하지만 한결같은 부채의 부드러운 바람처럼 자녀를 키우는데는 부모의 인내가 필요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손부채의 정성과도 비슷하다고 느낀다. 에어컨을 틀어 더위를 순식간에 몰아버리는 것처럼 손쉽게 자녀를 키우는 방법은 어디 없을까 하고 찾아보아도 그러한 방법은 있을 리 없다. 부채로 하염없이 바람을 부쳐주면 부모 팔목 아픈 줄은 모르고 기분 좋게 낮잠만 자는 자녀들처럼 자녀 키우면서 들어가는 부모의 돈, 시간, 에너지, 잔걱정, 애끓는 마음 등등 자녀 양육의 힘든 과정을 다 알아주는 자녀는 없지 않은가?
손부채로 자녀에게 바람을 부치다보면 조용한 마음가짐이 되고 자녀와 오가는 대화의 목소리도 잔잔해지고 부드러워져서 어느덧 잠이 오게 되던 기억은 모두가 바쁜 현재 상황으로는 너무 아득한 몽상으로 들리게 될 정도이다. 하지만 가정의 달인 5월에는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 부재 현실을 안타까워만 할 것이 아니라 한번이라도 손부채 대화를 가질 수 있으면 하고 더욱 바라게 된다.
고려 말 학자인 목은 이색의 시 중에 자손 시를 읽어보면 자녀가 굳은 심지와 단정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당부를 단아한 표현으로 느낄 수 있다. 자녀가 올바르게 살아갈 것을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14세기에 생존했던 유명한 문신 목은 이색 선생이건 21세기에 학부모 교실을 수강하는 우리네 부모님들이건 간에 공통점이 많음을 느낄 수 있다. 이번 달에는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손부채질을 하시면서 부모의 소망이 담긴 이 글귀를 천천히 한번 음미하며 읽어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손 시를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태도가 단정하면 그림자가 어찌 굽어지랴 근원이 깨끗해야만 흐르는 물이 맑으리라.
몸을 닦으면 가정을 잘 다스릴 수 있으니 어떤 것이든 정성에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다.
거칠고 음란하면 그 본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망령된 행동은 그 타고난 정기를 상하게 된다.
스스로 결단하는 것을 경계하는 까닭은 그 뿌리를 끊어버리면 나무도 무성치 않기 때문이다.
잠자는 자리가 평안한 곳이라 하더라도 하늘의 명함은 빛나고 밝은 것이다.
어찌 사람의 삶을 소홀하게 생각하겠는가 내 몸이 어디로부터 태어난 것임을 알고 살아야지.
혹시라도 몸을 더럽히거나 아무렇게나 처신한다면 그야말로 그 성정은 금수와 같으리라.
아! 귀여운 내 자손들이여 이 글을 잘 읽고 좌우명으로 삼아라.
신혜선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