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월한 예술성. 대가적 기교 세계 정상 고수
’신동 바이얼리니스트’로 불리며 어릴적부터 재능을 보였던 강동석씨는 탁월한 예술성과 대가적 기교로 세계 정상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1971년 17세의 나이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재단 콩쿠르와 워싱턴 메리웨더 포스트 콩쿠르에서 연달아 우승,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케네디 센터에서 보스턴 심포니 전 음악감독 인 세이지 오자와와의 협연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세계적인 연주자로서 확고한 기반을 다졌다.
그는 몬트리올 콩쿠르, 런던 칼 플레쉬 콩쿠르, 브뤼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등 세계 3대 콩쿠르를 차례로 석권하며 그의 명성을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널리 알렸다.
이 때부터 미국의 필라델피아, 클리브랜드, 로스앤젤레스, 세인트 루이스 오케스트라, 유럽의 로얄 필하모닉, BBC 오케스트라, 할레, 버밍햄, 스코틀랜드 국립 오케스트라, 뮌헨 필하모닉 등 세계 저명한 오케스트라들과 함께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오자와 외에도 뒤투와, 메누이인, 슬라트킨, 정명훈, 노링턴, 라자레프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함께 공연했다.
뉴욕 줄리어드 음대를 거쳐 커티스 음악원에서 이반 갈라미언을 사사했고 80년대 초 미국에서 파리로 건너갔다. 그의 폭넓은 레퍼토리는 표준적인 작품들 뿐 아니라 대다수 연주자들이 도외시하는 작품들 또한 많이 포함하고 있다.1995년 윤이상의 협주곡 1번을 초연하여 찬사를 받았고 1997년에는 ‘세계 음악제’ 개막 연주회에서 윤이상의 협주곡 3번을 아시아 초연하여 다시금 실력을 보여주었다.
2001년 뉴욕한국문화원 주최, 본보 특별 후원으로 링컨센터 앨리스 털리홀에 가진 뉴욕 독주회에서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연주실력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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