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소련지역에 사는 한국인을 고려인이라 부른다. 중국에 사는 한국인을 조선족이라고 부른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들은 어떤 면에서 더욱 한국적이다. 지금도 동성동본의 결혼을 금하고 있고 단오와 추석에 성묘를 빼놓지 않는다.
나는 카스피해 지역에서 사역하면서 다른 선교사들과 같이 이들에 대한 입장에 종종 혼돈을 일으킨다. 같은 성씨를 가지고 있기에 반갑고 그러나 한국어를 못하기에 어렵기도 하고 또 나아가 선교의 대상자로서 어떻게 사역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가 하는 의문에 아직 해답이 없다.
우선 그들의 대부분이 러시아화된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40대 미만의 고려인은 전혀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연해주 지역에서 계속 살던 고려인은 예외가 되겠지만. 연해주에서 1937년에 강제 이주되어 온 고려인의 손자 손녀 뻘이 되면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반 이상이 타민족과 결혼한 상태이다.
그들은 구 소련 지역 선교를 위해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큰 일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준비 없이 뛰어들어가 복음을 외쳤던 그 많은 한국 선교사들을 누가 도왔을까. 서로를 사기로 비난하는 경우도 많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일도 많았다. 그러므로 고려인에 대한 사역의 대전제는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애끊는 역사를 위로할 차례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최근에 중앙 아시아에서 극동의 하바로브스크 혹은 블라디보스톡으로 돌아가는 고려인들이 있기에 한국과 미국의 교회가 그들을 도와야 할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최근 코카사스 지방에서 만난 고려인 할머니는 굳이 장례식에서 관을 덮을 휘장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한다. 이유를 묻자 자기 아들이 아파트를 여러 채 가지고 있는 부자가 되었지만 한국식 장례식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할머니는 아주 어려서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쫓겨오게 되었다. 몇 년 동안 짐승처럼 살면서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들의 장례를 제대로 모시지를 못해서 겨울이 지나 눈이 녹으면 여기저기서 사람의 뼈가 보이던 것이 가장 무서웠단다. 그래서 지금도 자신의 장례식을 제대로 치르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라는 것이다.
고려인들도 한국이나 미국에서 온 선교사라고 무조건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고려인 사역이야말로 서로에 대한 기대보다는 현실 문제를 인정하고 단체간 협력 선교가 절실하다. 한국 정부와 KAICO, 또 각 NGO와 선교사, 교회가 단일 대고려인 사역 창구를 만들어서 선교, 상담, 의료 한국 방문 등 고려인의 현안 문제를 도와야 한다.
우리가 그들의 역사에 들어가야 할 때가 되었다. 지금처럼 50년만 지나도 사역의 대상인 고려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송 인 범 목사 (카스피해 선교회)
(LA 기윤실 소식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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