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준호 목사(헌츠빌침례교회)
누군가 질문을 한다. 냉수를 떠놓고 손을 비비며 소원을 아뢰는 무속 신앙인들의 기도와 기독교인들의 기도가 어떻게 다른가? 이 질문에 기도는 똑같이 하지만 기도의 상대가 다르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답이다. 즉 무속 신앙인들이 기도하는 상대는 우상이고 기독교인들이 기도하는 상대는 하나님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 대답보다 기독교의 기도에 대한 설명을 하고서 두 기도의 차이를 설명해야 한다.기독교의 기도는 한마디로 말하고 듣는 인격적인 교제이다. 따라서 이를 영혼의 호흡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 호흡이 있는 자들을 새로운 생명체로 부른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는 나의 모든 것을 말하고 난 결국에는 진리의 깨달음인 들음과 응답이 있다. 흡사 상담자 앞에서 나의 상황을 자세하고 정직하게 말하다 보면 상담자가 말하기 전에 상담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스스로 깨닫고 해답을 찾는 것처럼...
따라서 나의 상황을 아주 숨김없이 거짓없이 말할 때 더욱 분명하고 확실한 깨달음의 음성이 들리게 된다. 그래서 정직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본다는 의미는 그분의 음성을 깨달음을 통하여 듣고 진리와 만나는 것을 하나님을 본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정직하게 나의 상황을 세밀하게 모두 아뢰는 것이 곧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관계에서도 어떠한 숨김도 없이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잘못된 것은 잘못 되었다고 말하며 대화를 하는 것은 나의 마음을 여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을 여는 일은 곧 상대의 마음을 또한 열게 만든다.
그래서 때때로 부모가 자녀들 앞에 권위를 모두 버리고 잘못한 것을 정직하게 사과하면 자녀들의 마음이 열려 진정한 부모의 마음을 받아드리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목회자와 성도들간에도 나타나고 스승과 제자들간에도 나타나고 부부간에도 나타난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말씀에서도 내가 문 앞에서 두드리나니 마음을 열면 내가 들어가 너희와 더불어 먹고 마시리라고 말씀하신다.
결국 기도는 내가 나의 필요한 것과 나의 상황을 모두 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그러나 말하는 것은 나의 마음의 문을 열고 진리의 음성을 듣는데 목적이 있다. 즉 기도의 결국은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이의 의견을 듣는 것으로 종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진정으로 기도하는 이는 들을 줄 아는 귀가 열린 사람들이 된다. 그래서 예수께서 늘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을 지어다 말씀하신다. 즉 들을 줄 하는 기도를 하고 들을 줄 아는 신앙이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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