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신대륙에 발을 디딘 영국 이민자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의 하나는 교회를 세운 것이다. 뉴잉글랜드에서 버지니아에 이르기까지 식민지가 생기는 곳마다 우선 교회가 들어섰다. 미국 최초의 대학인 하버드도 1636년 목사를 길러내기 위한 신학교로 출발했다.
교회 다음으로 많이 들어선 건물은 술집(tavern)이었다. 인구가 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술집은 날로 번창했다. 17세기 말 12세에 하버드에 들어가 지금까지 최연소 입학 기록을 갖고 있는 당대의 석학 카튼 메이더는 “‘종교’라는 어머니가 ‘번영’이라는 딸을 낳았는데 이제 딸이 어머니를 망치고 있다”고 개탄한 기록이 있다.
날로 늘어나는 술집은 ‘언덕 위의 도시’를 꿈꾸며 종교적 이상향 건설을 위해 대서양을 건넌 필그림 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이들의 종교적 열정도 대세를 막지는 못했다.
술집이 미국 역사에 부정적인 영향만 미친 것은 아니다. 식민 초기의 술집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장소가 아니라 타운의 주요 이슈를 토론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미국 독립전쟁을 모의한 인사들이 주로 모인 곳도 13개 식민지 전역에 퍼져 있는 술집이었다. ‘미국 혁명은 술집에서 태동됐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공교롭게도 LA 한인타운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업소도 술집과 교회다. 초창기 미국처럼 목회자들의 개탄에도 불구하고 한인 술집은 날로 늘고 있다. 지난 주말 있었던 윌셔 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 선거에서 당선된 28명의 대의원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식당, 노래방,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 주인들이다. 이들은 한인 업주 중 정치 헌금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처음 주민의회 설립에 적극적이었던 사람들은 코리아타운에 유흥업소가 너무 많다고 그 규제를 주장하던 주민과 교회 관계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낙선했고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똘똘 뭉친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당선된 것이다.
물론 유흥업소 종사자들도 코리아타운을 구성하고 있는 일원으로 당당히 자기 주장을 펼 권리가 있다. 그러나 특정 업종 종사자들이 주민의회에서 과도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한인타운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특정 업종의 이익을 대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코리아타운 역사상 처음 열린 주민의회는 한인들이 대거 참여, 무더기 당선되는 이변을 낳았지만 지나친 한인 및 특정 업소 편중 등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벌써부터 대의원 대표 자리를 놓고 유흥업소 대표와 비유흥업소 인사간에 다툼이 일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초대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 대의원으로 당선된 사람들이 시 정부에 대해 한인사회 전체를 대표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일일까.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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