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무궁화상조회 회장)
내가 어릴 적, 그 한계는 분명치 않았지만 동무와 친구는 구별된다는 것을 아버님을 통해 들으며 자랐다. 그런데 38선이 생기고 난 후, 동무라는 말은 차차 사라지고 대신 친구라는 말이 동무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그 옛날 동무와 친구의 관계가 희미한 가운데 친구의 의미가 퇴
색됨을 씁쓸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독일이 EU에 가입하기 전, 독일 화폐에 그려져 있었던 인물로, 유럽에서 활동하던 가장 유명한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errer, 1471-1528)의 작품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으로 ‘기도하는 손’이 있다. 이 그림의 배경에 숨어있는 친구의 우정을 소개하면서 나와
내 주위를 둘러보고자 한다.
미술공부를 하고 싶었던 ‘뒤러’는 어린 시절 무척이나 가난했기 때문에 학비가 없었다. 그는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프란츠 나이스타인’을 찾아가 서로의 처지를 털어놓고 의논하던 중, 친구 ‘나이스타인’이 “뒤러, 네가 먼저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를 해라. 나는 식당에
가서 돈을 벌어 너의 학비를 대겠다. 그래서 네가 공부를 마치면 그 다음에는 네가 나를 지원해 주면 내가 공부를 할 수 있지 않겠니?”라고 제의하여 서로 약속하고 뒤러는 공부를, 나이스타인은 식당일을 하며 매달 뒤러에게 학비를 보냈다.
뒤러는 친구 나이스타인의 도움을 받아서 미술학교를 마치게 되었으며, 졸업을 앞두고 그의 그림도 서너 점씩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뒤러가 학교를 졸업한 후, 식당으로 친구 나이스타인을 찾아갔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 친구 나이스타인은 식당 한 어귀에서 두 손을 모으고 “주님, 저의 손은 이미 일하다 굳어져서 그림을 그리는데는 못 쓰게 되었습니다. 내가 할 몫을 뒤러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참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소서!”하고 기도하는 광경을 목격한 뒤러는 자기를 위해 희생하고,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친구 나이스타인의 손을 바라보는 순간, 자기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무엇보다 가장 커다란 감동을 느끼면서 붓을 들어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알브레히트 뒤러’의 유명한 ‘기도하는 손’이다.
그 손의 주인공인 ‘프란츠 나이스타인’의 투박한 손과 그 기도가 세계적 명작을 낳았다.우리 집에도 예수님의 사진 아래, 장식용으로 접시에 그려진 ‘기도하는 손’이 놓여 있다. 아침마다 그 아름다운 손을 바라보면서 친구와 중보기도의 의미를 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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