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협정 54년이 지났다. 그들이 태어난 때로부터 9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들의 인생행로를 더듬어보자.
북측 수석대표 남일은 1914년생으로 소련의 타슈겐트에서 사범학교를 나와 1942년에 소련군에 입대하여 1945년에는 소련군 대위로 북한 땅에 진주하였다. 그는 러시아어와 중국어에 능통하였다. 소련 극동군 88여단 소속 소령으로 북한 땅에 진주한 김일성(당시 이름 김성주)과 함께 소련군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으며 북한 노동당 창설에 기여, 인민대의원이 되었다. 625 때에는 인민군 참모장이었다. 전후에는 정치국원까지 올랐으나, 김일성에게는 가장 믿을 만한 심복이며 동지임과 동시에 김일성 우상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하였다. 남일은 김일성의 소련군 시절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1976년에 사망으로 발표되었다.
백선엽에게 소위 ‘상가의 개’ 쪽지를 보여줬던 북측 대표 이상조는 부산 동래 출신으로 1915년생이었다. 중국 남경군관학교 출신인 그는 1945년에 입북하여 6.25 때에는 인민군 정찰국장으로 휴전협상에 참여하였는데, 회담장 안팎에서의 냉소적 어투로 또 파리가 얼굴에 앉아도 꼼짝 않는 돌부처로 이름이 났었다. 이런 태도는 남한출신의 약점을 덮어보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1956년 당 중앙위원 후보위원에 올랐던 그는 소련의 모스크바 대사로 부임하지만, 곧 김일성 개인숭배 운동에 반기를 들어, 본국 소환명령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는 소환에 불응하고 소련에 망명함으로써 오늘까지 생명을 부지 할 수 있었다.
소련에서 정치학 박사로 변신한 그는 1989년 2월 소련을 방문한 연세대 최평길 교수에게 김일성의 계획적 남침을 폭로하면서 증거자료들을 공개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그리고 그해 9월, 가족상봉차 서울을 방문하여 ‘북한은 김일성 사상으로 최면이 걸린 이상한 나라’라고 비난하게 된다. 이 때 백선엽 장군과도 부드러운 시선으로 반갑게 만나게 되는데, 자신의 옛 모습을 떠올리듯 백 장군이 ‘상가의 개’ 쪽지 얘기를 했지만 이상조는 ‘잘 기억이 안 난다’고 얼버무리며 멋쩍어했다.
또 한 사람의 북한측 대표 장평산. 그는 1915년 평남산으로 중공 팔로군 대대장을 지냈으며 625동란 시에 소위 ‘조선의용군’으로 북한에 일찌감치 들어왔지만, 곧 지휘관이 부족한 북한군에 편입되어 휴전협상 시에는 북한군 1군단 참모장이었다. 625 후에는 중장으로 진급되어 평양수비대 사령관이 되었고, 1957년에는 인민대의원으로까지 승승장구하는 듯하였으나, 김일성의 1인 독재체제를 비판하다가 1958년 소위 김일성의 연안파 숙청 때, 쿠데타 음모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당했다.
한편 남측의 유일한 대표 백선엽 장군은 평양 출신으로 1920년생이다.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해방과 함께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으나 남으로 탈출하여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 국방경비대 중위로 임관되어 국군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625동란 초기에는 1사단장으로 평양탈환에 앞장섰던 그는 휴전협상 시에는 1군단장이었으며, 잠시 휴전협상 대표로 있다가 곧 전선에 복귀하였고, 휴전 당시에는 이미 4성 장군으로 진급, 33세로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1964년 전역 후에는 외교관으로 여러 나라의 한국 대사를 지냈으며, 교통부 장관 시절도 있었고, 성우회장도 지냈다. 86세인 지금도 여전히 반핵(反核), 반김(反金), 반공(反共) 운동에 소신을 굽히지 않고 정열을 쏟고 있다.
이렇게 북측 대표 3인 중 2명은 일찌감치 망자(亡者)가 되었고, 1명은 반김(反金)으로 돌아섰다. 남측 대표 백선엽은 여전히 반공(反共), 반김(反金)의 상징으로 건재하고 있다. 젊은 시절 최고의 가치라고 확신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3명과 말년까지 여전히 최고의 가치를 고수하고 있는 1명의 인생유전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된다.
장윤전 볼티모어,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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