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모목사(뉴욕한국인그레잇넥교회 원로)
다른 많은 사상체계나 종교들과 구별하여 기독교의 독특성을 말한다면 ‘역사적 종교’라 하겠다.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뜻이 인류 역사와 밀접히 관계되고, 그 구체적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건에서 표시되었다. 또한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인간의 역사와 현실 사회 속에서 섭리 활동하심을 뜻한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와 현실을 예리하게 관심하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정의와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사랑이 현실 사회의 죄악과 불의를 정복하고 하나님 나라와 그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 활동이 그의 뜻을 이루는 데 최소한의 공헌이 되기를 염원한다. 우리는 성서에서 하나님이 관여하던 많은 역사와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사회악을 미워하되 동시에 고난 받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지구하게 역사하심을 본다.
기독교의 이러한 역사적 관심이 속된 세계의 역사는 도외시하는 종교나 이념, 다만 추상적 이상을 추구하려는 다른 종교들과 상이한 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와 현장의 죄악과 불의, 백성들의 아픔과 고난을 외면하고 현실을 도피한 채 값싼 신의 축복과 위안을 미끼로 타계적일 수 없다. 한에 찬 민중의 현실적인 억압과 착취와 불의에 대해선 눈먼 허약자가 되게 하는 종교라면, 이는 역사적인 기독교의 독특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역사적 현실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허구적인 안도로 자족케 함으로써, 칼 마르크스의 공격의 과녁인 ‘아편적인 종교’가 되게 한다.
금세기가 시작되면서 개신교 신학에서 역사의 개념이 한층 더 중요시된 이유의 하나는 19세기 말 역사적 감각의 발달과 생의 모든 영역을 역사적으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기독교의 역사적 근거에 대해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 데 있다. 이는 알버트 슈바이처가 그의 저서 <역사적 예수의 질문>에서 예수 자신의 사명의식과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역사 속에서 분명해진다고 천명한 데서 중요 계기가 된다. 또 하나의 주요 이유는 금세기 양차의 세계대전들이 진보적 사관에 회의를 제시하고 다시 성서적 역사관과 기독교 신학의 역사 이해에 주의를 환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적 과정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기독교 메시지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개신교 신학자들 사이에 사상적 차이가 있으나 역사와 오늘의 현실이 기독교 신앙에 중추적이라는 데서 공통된다. 현대 신학자들이 역사적 현실을 하나님이 관심하는 현장으로 간주, 이를 예리하게 주시하며, 이 역사를 떠나서는 기독교 신앙이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 이 신앙이 기독교의 독특성이요 생명이다. 따라서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기독교의 중추적인 정신과 생명을 저버리는 것이다.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과 이 역사를 위해 희생하신 그리스도와 또한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위해 끊임없이 탄식하며 활동하는 성령의 역사를 거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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