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미국에서 40년 가까운 세월을 맞게 됐다. 내가 태어난 고국에서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았으니 이제 제2의 고향이라 불러 마땅하건만 점점 이곳이 낯설어지는 느낌이 든다.
왠지 도시근교 생활이 지루하고 싫증이 난다. 몇 주 전 북버지니아에서 남동쪽으로 집과 땅의 시세를 알아볼 겸 드라이브를 갔었다. 불과 2시간 30분 떨어진 거리에 교통량도 적고 한편으로는 시원한 바다가 있고 또 다른 편으로는 푸른 숲 속에 펼쳐진 야산이 참 보기 좋았다. 이곳에 있는 조지 워싱턴 생가와 웨스트모어랜드 주립공원도 둘러보았다. 웨스트모어랜드 주립공원은 우람한 나무들이 빽빽이 솟아있어 하늘이 안 보일 정도이다. 정말 깨끗하고 조용하며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곳에서 노후를 바다와 자연을 즐기며 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과연 이 곳에서 인종이 다른 내가 이웃들과 잘 어울려 지낼 수 있을 지 왠지 자신이 없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이 경제파탄이나 사회가 극심하게 어려움에 빠지면 엉뚱하게 합법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이민자들에게 무서운 타격을 준다. 독일 나치들이 유태인을 집단으로 살해한 사건, 또 프랑스 제3공화정 때 ‘Dreyfus Affair’는 하나의 예가 될 것 같다.
Dreyfus는 프랑스군의 고급 정보장교들 중 한 사람이었다. 프랑스군의 기밀이 계속 새 나가자 주로 왕당파의 귀족 정보장교들은 유태인인 Dreyfus에게 간첩죄의 누명을 씌웠다. 한 무고한 고급 장교가 외국인 태생이라는 이유로 악마의 섬이라고 일컫는 기니 해안에서 떨어진 중범 수용소에 종신형을 받고 억울하게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후 Dreyfus는 많은 지식인들과 작가 에밀 졸라의 투쟁으로 풀려났으나 너무나 긴 세월을 감옥에서 시달려 석방될 때는 이미 늙고 불행하게도 미쳐 있었다.
관동지진 때 일본인들이 그 땅에 사는 한국인들을 대나무 꼬챙이로 무참히 살상했던 일. 불과 몇 년 전 LA 폭동 때 한국 동포들이 광란한 흑인들의 분풀이 대상이 되었다. 이제 미국도 안전지대라고만 믿을 수 없다.
미국인이라면 고마워하고 존경하던 한국인들이 언제부터인가 무엇을 알았기에 반미운동이 심심찮게 일렁이고 북한 핵문제 등, 이러한 때에 미국인들이 한국 교포들을 고운 시선으로 볼까.
도시근교에 살자니 언제 또 테러가 터질 지 모를 일. 조금 안전한 시골에 살자니 레드넥의 시선이 따갑고, 한국에 나가 살자니 이곳에 이미 뿌리를 내린 2세들이 마음에 걸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하루하루 엉거주춤이다. 남의 나라에서 사는 이민생활이 이런 것인가. 아니면 유독 나만이 이렇게 불안한 영원한 이방인인가.
동심초/스프링필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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