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언덕은 숲 사이로 반듯하게 나 있다. 뭇 사람들이 이 언덕을 오르내리지만 동네사람들처럼 이 언덕을 시원하게 느낄 수 있을까. 복잡한 하루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은 이 언덕에 이르러서야 마음이 가라앉는다.
언덕 아래로 옹기종기 숲에 숨겨진 집들이 하나둘 불을 켜 가노라면 저녁은 숨소리를 줄이고 어두움 속에 짙어간다. 한여름은 나무들이 먹칠을 하듯 검고, 반짝이는 반딧불이 높이를 재듯 위아래로 난다.
풀숲이 높은 해리슨 집은 올해는 재빠르게 처마 끝에 매달린 성탄 전등을 뗀지 오래고, 교통사고를 당했던 부인이 가끔 들에 나와서 화초를 가꾼다. 이곳 풀숲에 사슴이 살고 있는지 모른다. 밤에만 움직이는 이 사슴들이 언덕을 지낼 때 흔히는 코를 푸는 소리를 내고 다른 숲으로 달려간다.
두 나이 많은 부부가 언덕 모퉁이 집에 살았는데 노인은 숲을 거두고 꽃나무를 심으며 온종일 나무를 가꾸며 살더니 어느 날 그 집 앞에 응급차가 서 있었고 그는 아끼던 나무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가끔 산토끼가 나무 사이로 무심코 풀을 뜯고 있다.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서 이 집을 송두리째 감추고 있다.
스미스 집은 현관 앞까지 나무가 무성하다. 기척이 없는 이 집주인은 유쾌하고 예의가 바른 영국인이다. 마주치면 한국과 축구 이야기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언덕을 지나는 누구에게나 손짓으로 인사하고, 때로는 지나는 이를 멈추고 말을 건넨다. 부인은 밤에만 근무하는 방사선과 의사다. 새벽에 돌아와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이른 저녁에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내린다. 아름답게 보이는 커플이다. 병원에 일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정원에서 사는 스미스가 1년이 넘도록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가 무작정 집을 나갔다고도 하고, 별거라고도 하지만 부인이 술에 취하였는지 비틀거리며 개를 끌고 언덕을 오른다.
오헤이는 오십을 넘은 대학교수지만 긴 머리를 땋고 뜨락을 돌보지 않는 이웃이다. 잔디 대신 돌을 깔고 나무를 심지 않는다. 부인은 집에서 미술을 가르친다. 자녀들은 대학에 갔고, 8년 전에 러시아에서 입양한 두 불구 아이들이 이제는 자라서 쩔뚝거리며 언덕을 오르내린다. 울어본 적이 없다는 이 불구아를 키우며 두 부부는 젊어져 갔다.
언덕에는 한창 새 집들이 들어서고 숲은 점점 사라져간다. 사슴과 산토끼는 이곳을 떠나가야 할 것이다. 언덕에 선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 사는 사람들이다. 언덕은 더욱 비탈이 되어갈 것이고 반드시 숨을 몰아쉬어야 오를 것이다. 행복을 진정 바란다면 안타깝고 소중한 것들을 다 내려놓고 언덕에 서야하는 것이다.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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