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모목사(뉴욕한국인 그레잇넥교회 원로)
틸리히(Paul Tillich)는 역사 이해 문제를 자연을 통해 역사를 해석하는 ‘비역사적 역사 해석’과 역사 그 자체를 통해 해석하는 ‘역사적 역사해석’의 유형으로 나눈다. 역사의 독립성을 부인하고 공간을 중심으로 자연적인 용어를 통해 역사를 이해하는 비역사적 역사 해석의 유형은 중국의 도교, 인도교 브라마 교설, 희랍의 자연철학과 근대 유럽의 생의 철
학 등이다. 그들의 해석을 종합해 보면 그것이 종교든 사상이든 역사적 현실 해석에 있어 자연이 중심이 되며, 시간에 반해 공간이 지배적이다. 시간은 회전 내지 무한히 반복할 뿐이다. 현 세계는 궁극적인 가치가 없으며, 참된 존재나 궁극적인 선은 생명을 초월한 부동의 영원한 것뿐이다. 구원은 시간과 역사로부터 도피적인 개인들의 구원이요, 결코 시간과 역사 속에서의 공동체적인 구원이 아니다.
역사는 퇴화 과정이요 피할 수 없는 세계 자멸로 인도한다. 비역사적인 역사 해석의 종교와의 상호 관계는 특별한 공간들을 신화하는 다신론이거나 시공을 다 같이 정하며 초월적인 어떠한 하나를 신화하는 범신론적이다.
이러한 비역사적인 역사 해석을 통해 국내외 현행 각급 한국 교회와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역사적 현실에 대한 태도나 활동을 관찰할 때, 스스로는 어떠한 신앙이나 주장을 하든 비역사적인 양상을 드러낸다. 심령의 부흥이나 생산적 신앙, 말세와 성령을 주장하면서, 역설스럽게도 물량의 증대로써 저들 종교 신앙의 성공을 내세우는 소위 순신앙과 순복음을 내세우는 대부분의 오늘의 교회의 작태는 역사를 비역사적으로 대하고 있다. 현세계의 역사적 현실을 외면한 채 거기에 아무러한 궁극적 가치나 의미도 인정하지 아니하고 저 세상에 더 관심케 하기에 다신교나 범신론, 결국 이교적인 입장과 더 유사함을 발견한다.
그러나 구약성서 창세기의 창조신학과 출애굽기의 구속신학이나 예언자들의 역사 활동을 관찰하고 신약성서의 초기 기독교 역사를 점검할 때, 히브리-기독교는 역사를 중시하며 그들의 모든 활동이 역사적 현실 속에서 활동한 것을 본다. 물론 성서와 기독교회사 속에서도 비역사적인 요소들과 종교적 자연주의가 나타나 계속 투쟁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사의 보편적 역사의식의 참된 출발점이 구약성서에서 발견되며, 구신약에 흐르는 중심은 하나님의 역사 관여와 신약에서 예수가 역사 속에 나타나, 세계의 역사를 주도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본다.
이제 구약의 창조설화나 구속신화, 예언자들의 역사 이해와 함께, 신약성서와 기독교가 보여주고 가르치는 역사의 독특성이 무엇인가를 논의해 보자. 또한 한국교회가 기독교를 ‘비역사적 종교’로 전락시키는 것이 왜 문제가 되며, ‘역사적 종교’로의 선회가 참된 기독교의 본질에의 복귀가 됨을 살펴보려 한다, 만약 한국 교회가 역사를 외면한다면, 이는 스스로 기독교의 독특성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기독교의 본질을 저버리는 것을 뜻한다. 구신약과 기독교의 중심 사상이나 교회사에 흐르는 역사를 진지하게 추구할 때, 역사적 종교성은 기독교의 생명이요 근간이 됨을 알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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