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최근 김산이라는 가명으로 잘 알려진 장지락(張志樂, 1905 ~1938)씨에게 이번 광복절을 맞이하여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기로 결정하였다.
김산은 미국 여기자 헬렌 포스트(필명 님 웨일즈)의 손을 빌어서 자서전을 써서, 미국에서는 1941년, 한국어로는 1984년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장지락은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기독교 계통의 중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가 일제탄압에 대해 무력으로 항거하지 않는 순교정신을 어리석은 것으로 믿었다.
특히 선교사들이 “조선이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고 계시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김산의 일생과 관련하여 교회사에 흥미로운 사실이 최근 밝혀지고 있다. 김산은 1920년 초 서간도 삼원포에 갔는데 이 곳에서 ‘안동희 목사’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 그 집에 머물면서 그의 딸을 사랑하게 되고, 그를 지극히 존경하게 된다.
그러나 김산이 삼원포를 떠난 수주 후 일제군대에 의해 자행된 경신참변으로 ‘안동희 목사’의 가족은 큰 시련을 겪게 된다.
당시 서간도는 국외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한 곳이었고, 삼원포는 그 중심이었다. 삼원포 교회는 독립운동 지도자들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제는 서간도 교회들을 파괴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교회 지도자들을 무참하게 살해하였다.
1920년 경신참변 때 일제는 삼원포 교회를 불사르며 ‘안동희 목사’의 두 아들을 산채로 세 동강내어 죽이고, 나이 많은 ‘안 목사’에게 맨손으로 자기 무덤을 파게 한 후 산채로 매장하였다. 세 식구의 참혹한 죽음 후 부인은 강물에 몸을 던졌고, 그 후 남은 가족들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고 김산은 전기에서 밝히고 있다.
그런데 김산이 ‘안동희 목사’라고 자서전에서 밝힌 그 분이 안동식 장로였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고 있다. 안동식 장로는 삼원포 교회를 세우고, 독립운동 단체들을 적극 지원한 인물로 경신참변 중 삼원포 교회를 끝까지 사수하다가 순교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아직 한국 교회사에 잘 소개되지 않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김산과 같이 공산주의 활동을 통해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도 건국훈장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한편 교회는 그 때와 달리 사회의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땅에 버려진 소금과 같이 밟힘을 당하는 때가 되었다. 안동식 장로와 같은 분들이 현대 교회에 더욱 요구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에까지 존경받는 교회 지도자들이 요구되고 있다.
김만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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