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도록 하얗고 노란 들꽃들이 아직도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것을 보면 가을은 아직 깊지 않다. 그러나 저렇게 구름 한 점 없이 드높고 푸른 걸 보니 가을 하늘은 완연하고, 윤기 잃어 가는 나뭇잎들이 제가끔 예쁜 색깔로 물드는 것을 보면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귀뚜라미도 또르르 또르르 맑은 음을 내며 풀 섶에서 마구 울어대고, 아침은 아침대로, 낮은 낮대로 그 심상한 기온이 아주 적당하다.
밤은 더욱 그럴듯하다. 별이라도 총총하면 재킷을 걸치고 나가 별 하나 나 하나 별을 세어가며 북두칠성도 찾아보는 멋진 가을밤을 노래하고도 싶어지고 잠들기가 아까워 책을 읽으며 미지의 것을 탐색하고 또 자신을 돌아보는데 가장 적절한 계절이기도 하다. 한여름 뜨거운 땡볕에 그을린 얼굴마다 가을 냄새가 흥건히 배어있는 듯 신선함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다.
세월이야 원래 빠른 법이지만, 그래서 다들 화살처럼 빠르다고 푸념하는 바이지만 점점 짙어 가는 가을 풍경을 보면 폭염의 여름날이 먼 옛날로 여겨지기만 한다. 그렇게 덥고 끈질기던 땡볕은 이제 작별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계절도 한 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사계보다 더 완벽한 생은 없다. 봄에 싹이 트고, 여름은 성장하여, 가을엔 결실을 맺고, 겨울엔 휴식에 들어간다.
또 가을은 뭔가를 생각하게 하지만 욕망을 갖게도 하는 계절인 것 같다. 프랑스의 과학자이면서 철학자인 깨스롱 바헤라르(1884-1962)는 “참다운 삶을 살려고 하면 겸손하여야 한다. 자기의 삶을 너무 화려하게 포장하려고 하면 그는 더 이상 참다운 삶을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간은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자기 성장과 충족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무는 그 종류에 따라 열매를 맺고 인간은 그 성격의 결과를 거둔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모두가 한번 주어진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기에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며 더 나아가 진지하게 삶을 모색하며 끊임없이 사색하는 아름다움을 이 가을에 가져보는 것이 앞으로 더 나은 삶의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또한 가을은 누군가의 마음에 내 마음을 새겨 넣고 싶은 계절.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계절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내 사랑의 마음을,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화해의 마음을, 나보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따뜻한 축복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진다. 시간에 쫓기어 만나지 못하는 친척이나 친구가 어느 날 나의 편지를 받는다면 그들은 얼마나 즐거워할 것인가. 그립고 보고싶은 친척,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며 말하듯 글을 쓰는 낭만. 이 가을에 흠뻑 젖어보자.
유설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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