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원하는 것을 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소박한 초심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어 고통스러워하는 부모님을 대하면 나도 반성을 한다. 내가 부모님들의 각 사정을 얼마나 가슴으로 이해한다고 그저 하기 쉬운 얘기로 마치 그들의 자녀 교육이 잘못된 것처럼 그들에게 또 다른 낭패감을 갖게 하나 싶어 그런 말하는 나도 힘들 때가 있다.
그러나, 자녀 교육을 위해 애쓰는 부모님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들은 온몸으로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자녀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그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해서 상대적으로 자녀에 대한 애착이 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J 어머니는 하루가 부족하게 열심히 사시는 분이다. 파트타임으로 일하시면서 손수 자녀들을 등하교 시키고 시부모님까지 모시고 사는, 자신보다 가족을 우선으로 여기며 사시는 분이다. 어머니 자신은 미국에서 힘들게 사시지만 자식만큼은 전문직에 종사하며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평범한 부모의 마음으로 두 자녀를 정성을 다해 키우셨다.
딸이 10학년때까지는 어머니가 이끄는 방향으로 잘 따라오는 것 같더니 11학년부터는 어머니의 생각에 자주 토를 달고 딸과의 대화가 일방적이 되면서 어머니의 심기가 영 불편해졌다.
조금만 열심히 하면 ‘A’를 받을 수 있는 데 ‘C’를 받고서도 미안해하지 않고 짜증만 내는 딸을 보며 어머니는 소그룹 상담에 오셔서 “내딸은 내가 잘 아는데… 조금만 하면 잘 할 수 있는데…” 하시며 가슴으로는 포기가 안 된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그러는 자신이 욕심인 줄 알지만 지금 기대치를 낮추면 그것 마저도 못하니 그렇게라도 할 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그리곤 몇달이 지나 어머니는 방학동안 두자녀와 대학도 방문하고 여행도 하면서 딸이 다시 마음을 추스린 것 같다며 좋아하셨었다.
며칠 전 어머니는 나에게 편지 봉투를 내밀며 딸이 준 편지라며 읽어보라고 하셨다. 밤새 우셨는 지 눈은 퉁퉁 부어있었고 목까지 잠겨 편지를 받아든 내가 긴장했을 정도였다. 딸은 서투른 한글로 타이프를 쳐서 엄마에게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제까지는 아무리 엄마를 설득해도 안되었는 지 이번에는 그녀의 입장을 관철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자신은 엄마가 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으니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택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얘기였다. 더 이상 엄마에게 실망시켜드리기 미안하여 미리 말씀드리니 만약 엄마가 원하는 전공의 학교를 못 가더라도 실망하지 말라는 것이 요지였다.
편지의 내용은 겉으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을 이해해 달라는 내용이었지만 그 내면엔 “엄마, 나 지금 무척 힘들어요.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 못 들어갈까봐 두려워요”하는 메시지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딸아이의 힘든 것은 이해하지만 ‘조금만’ 참으면 미래가 보장되는데 그때 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늦지 않다며 자녀와 팽팽한 감정 싸움을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축 쳐진 어머니의 어깨 너머 바로 코앞에 다가온 딸의 밝은 미래를 포기할 수 없는 어머니의 절박한 심정으로 자식의 일이 그냥 자식만의 일이 아니라 그녀의 일이기도 하고 가족 전체 일이기도 하여 이제까지 딸한테 투자한 것이 얼만데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냐며 야속해 하셨다.
머리로는 자녀가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기를 바라면서도 어머니의 뼈아픈 경험으로는 힘들게 공부해서도 맘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인데 자녀가 힘든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갈 지 걱정이라는 어머니. 부모들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들 자녀에 대한 기대치가 조금은 넉넉해지고 부모들이 자녀를 양육시키며 얻은 삶의 지혜를 통해 부모 자신들의 행복 역시도 소중히 여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녀의 미래 뿐 아니라 부모의 제 2의 인생 역시도 가슴 아파하며 조금은 고삐를 조이는 것은 어떨지.
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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