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아버지 없는 자식은 없다. 자식의 심정은 아버지가 오랫동안 살아 계시기를 소원한다. 인간의 역사도 다른 만물과 같이 한번 지구상에 태어나면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것이 천륜의 법칙이니 말이다.
어릴 때 시골 이야기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달맞이 집을 짓는다. 새해 처음 동녘에서 떠오르는 보름달은 다른 때보다 둥글고 크다. 그래서 대보름 달이다. 아들을 바라는 동네 아주머니는 소복단장하고 달을 향해 합장하고, 보름달 같은 아들 하나 낳게 해달라고 절을 올린다.
내 아버님은 1905년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셨다. 비료가 없던 시절이라 늦은 봄, 산에서 연한 나뭇잎과 풀들을 베어다가 논에 뿌렸다. 겨울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시어 동네 주위의 개똥을 주어다 거름으로 사용하셨다. 풀이 자라는 봄부터 가을까지 아침 일직 소먹이고 학교 가는 것이 어린 나의 몫이었다. 빨리 일어나 소 몰고 나가라는 아버지의 호통에 눈 비비며 소 몰고 들로 나갔던 기억이 가끔 떠오른다. 부지런하지 못하면 보릿고개를 넘기기 어려웠던 50년 전 시골 생활이었다.
아버지는 막내인 내가 농사꾼이 되기를 바라셨다. 오래 함께 지내시려는 마음에. 어느 날 아버지는 나에게 딱 맞는 지게를 만들어주시며 산에 가 나무 땔감을 해오라고 하셨다. 나는 신이 나 얼른 나무 한 짐을 하여 집으로 왔다.
아버지는 내가 군대도 가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 후 나도 결혼을 하여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제 내 흰머리를 보니 많은 세월이 지나갔다.
나는 수년 전 큰 수술을 하고 비몽사몽간의 순간이 있었다. 나는 그때 아버지를 무척 그리워했고 생각도 많이 했다. 어느 날 밤 잠을 자는데 미국 병원의 내 침상에 그리운 아버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나를 보시며 “너는 말을 할 수 있다”고 말하시곤 바로 사라지시는 것 아닌가. 나는 벌떡 잠에서 깼다. 그 순간 너무도 선명한 아버지의 젊었을 때 모습과 그 말씀을 메모지에 써놓았다. 그 때부터 나에게 용기를 주신 아버지의 격려의 말씀을 믿기로 결심했다.
아버지가 태어나신 지 100주년이 되는 금년에 우리는 자식을 결혼시켰다. 이제 내 인생 사이클도 돌고 있구나 느끼며 살고 있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는 자식의 언덕이란 얘기를 듣고 자랐다. 언덕이란 힘들 때 마음대로 기댈 수도 있고, 자기 등이 가려우면 언제든지 비빌 수도 있으니, 든든하기도, 만만하기도 한 분이 아버지의 존재라 여겨본다.
부지런하면 건강할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의 신체구조이다. 앞으로 아버지와 아들(자식)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나도 우리 아버지와 같이, 용기를 부어줄 수 있는 애비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요, 바램이다.
정상대/훼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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