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겐 (자살이) 유일한 돌파구였던 것 같다. 누구보다 강하고 능력 있는 친구였는데…. 조직이 그를 그렇게까지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넣었다.”
지난 14일 자살을 기도하면서 3일째 의식불명 상태인 KBS 김모 PD의 병실을 지키던 동료 PD의 씁쓸한 한마디다. 특출한 능력 덕분에 새로운 분야의 개척자로 발탁됐지만, 어이없는 장벽에 가로막힌 끝에 가지 말아야할 길을 선택한 젊은 연출자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말이다.
실제로 김 PD는 자살 기도 현장에 남겨둔 제작 노??유서 형식을 글에 ‘모든 게 사면초가다. 여기서 중단하면 죽기로 각오했다. 이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죽어서라도 작품을 완성하고 싶다’고 절박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김 PD는 지난 2004년 말 영화진흥위원회와 KBS의 공동 추진 프로젝트 ‘편성기획공모’에 기획안이 채택돼 HDTV 영화 ‘피아노 포르테’를 연출하게 됐다.
드라마 조연출을 하며 틈틈이 준비한 시나리오가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채택되면서 연출가 데뷔를 영화로 하게 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인정 받은 셈이다. 입사 6년차인 김 PD는 동기 PD 중에서 가장 촉망받았고, 새로운 분야에 첫 걸음을 내디디면서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특출난 능력이 오히려 그를 낭떠러지로 몰아넣은 격이 됐다. 드라마팀 소속이던 김 PD는 편성본부의 영화ㆍ만화팀으로 파견돼 시나리오 작업 등 제작을 준비했다. 하지만 제작 시스템 미비와 지원 부족 때문에 고전을 거듭해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스태프를 꾸리고 지난 10월초 크랭크인을 앞두게 됐지만 이번엔 제작비 수급의 문제에 직면했다.
당초 제작비는 10억원 남짓으로 초라하게 책정됐지만 그나마도 집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김 PD는 자신의 사재를 쏟아부어가면서 진행했지만 뜻하지 않게 제작비가 5억원 남짓으로 대폭 삭감됐다. 김 PD는 이어 악전고투하며 직접 영화 제작비를 투자받기 위해 동부서주했지만 더 이상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김 PD가 자살을 기도한 14일 이전까지 KBS 드라마팀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방송하는 드라마 모두 대성공을 거두며 ‘드라마 왕국’의 지위를 확고하게 굳혀가고 있었기에 PD들은 표정엔 여유와 웃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드라마팀의 촉망받던 한 젊은 PD는 외로운 투쟁을 돕지 못했다. 김PD는 홀로 좌절과 절망에 휩싸여 있었고 극단적인 상황을 선택했다.
김 PD는 유서 형식의 글을 통해 ‘내 남은 전세금 빼고 퇴직금과 위로금 합쳐서 스태프 체불 임금을 지불해 달라. 나 죽어서 화장하게 되면 대본 10부까지 넣어달라. 저승에서라도 투자 받아서 완성하겠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강남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 있다. 현재 뇌기능은 조금씩 회복돼 시청각 기능은 살아 나고 있지만 여전히 의식을 회복할 지는 미지수다. 그가 빨리 깨어나 제작 현장에서 밝은 미소로 동료들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동현 기자 kulkuri@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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