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재미없는 운동 경기는 응원할 ‘우리편’이 없는 경기이다. 게임을 잘 하든 못하든 ‘우리편’이 뛰어야 가슴 졸이고, 환호하고, 분통 터트리는 감정 이입이 가능해진다.
미국에 살면서 오래도록 오스카나, 골든 글로브… 화려한 스타들의 잔치는 ‘우리편’이 없는 경기와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어느 배우, 어느 감독, 어느 영화가 상을 받았다고 한들 그것이 내가 흥분하고 감동할 끈끈한 교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우리와는 거리가 먼 ‘그들의 잔치’일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먼 잔치가 갑자기 ‘우리의 잔치’ 같은 친근함으로 바짝 다가오고 있다. 샌드라 오, 김윤진, 대니얼 김 등 한인 배우들이 시상식장에 등장해 상을 받고, 그들의 수상소감이 주류 매스컴을 타고 우리의 안방으로, 우리의 가슴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우리로서는 모국의 문화예술 바람인 ‘한류’도 반갑지만 미국 내 토양에서 꿋꿋하게 버텨 꽃피운 그들, 그래서 한인 이미지 상승 효과까지 가져오는 그들의 존재가 더 소중할 수밖에 없다. 특히 샌드라 오는 이제 미국인들의 일상 대화에서 이름이 오르내릴 만큼 스타가 되었다.
부모로서 큰 보람은 자녀의 적성과 재능을 찾아 키워주는 일이다. 탄생 250주년 음악회가 한창인 모차르트, 며칠 전 타계한 백남준 같은 인물들은 평생 자기 일에 미쳐서 살았다는 점에서 행복한 사람들이다.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 재능 있는 일, 그래서 열정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처럼 부러운 사람은 없다.
자녀를 그런 ‘부러운’ 인물로 키우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캐나다 오타와에 사는 전영남 씨는 두 가지를 꼽았다. 아이의 타고난 재능을 찾아주는 일 그리고 아이의 열정을 존중해주는 일이다. 그는 샌드라 오의 어머니이다. 아이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 지를 알려면 우선 필요한 것은 여러 분야를 접할 기회를 주는 것.
“너덧살 때부터 피아노, 발레, 운동 … 다양하게 시켜봤는데 삼남매의 반응이 다 달랐어요. 둘째인 미주(샌드라)는 발레를 유난히 좋아하더군요. 무대에 올라가는 걸 좋아했어요”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연극에서 주연을 맡았다고 해서 가보니 ‘저게 내 딸인가’싶게 관중을 사로잡더라고 그는 회상한다. 딸의 재능은 중학교, 고등학교로 이어진 활발한 연극활동으로 확인이 되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에게 더 어려운 것은 후자. 아이의 열정을 존중해주는 일이다. 아무리 아이가 좋아하고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험난한 고생길일 경우, 일단은 막아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전씨도 마찬가지였다.
“고교 졸업반이 되어 미주가 일반 대학 대신 연극학교로 가겠다고 하는데 ‘이거 큰일 났다’싶었어요. 다른 분야는 자기가 노력하면 되지만 배우는 다르잖아요. 아시안 얼굴로 백인사회에서 (아이가) 당할 좌절을 생각하니 두려웠어요. 6개월을 말렸지요”
딸이 배우로 성공한 지금 그는 열정을 가지고 사는 딸의 삶이 부럽다고 했다.
“우리 세대에게는 안정이 최우선이었지요. 전공도, 직업도 먹고사는 것을 기준으로 선택했어요. 그런데 은퇴한 지금 되돌아보면 밥은 어떻게든 먹고살지 않았을까 싶어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 본인도 행복하고, 성공 가능성도 더 높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열정이 존중받을 열정은 아니다. 열정의 성분이 중요하다. 열정을 뒷받침할 만한 재능과 역경을 이겨낼 만한 강인한 의지가 갖춰져야 하겠다. 밴나이스 고교 카운슬러인 김순진 박사의 말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학교에서 보면 가수나 배우, 운동선수로 성공하겠다며 ‘대박’을 꿈꾸는 아이들이 많아요. 하지만 꿈이 실현되는 경우는 너무 적으니 무작정 격려할 수만도 없지요”
삶은 많은 경우 둘 중 하나의 선택이다 - ‘안정’이냐 ‘열정’이냐. ‘안정’을 택한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가는 이 세상은 ‘열정’을 가진 소수의 힘으로 진화한다.
권정희 논설위원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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