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는 ‘스크린쿼터 축소’를 두고 찬반 논쟁이 뜨겁게 진행 중이다. 스크린 쿼터란 국산영화 의무상영제라고도 한다. 외국영화의 지나친 시장잠식을 방지하는 한편 자국영화의 시장확보가 용이하도록 해줌으로써 자국영화의 보호와 육성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다. 영국에서 처음 실시된 이 제도를 현재 시행중인 나라는 한국, 브라질, 파키스탄, 이탈리아 등이다. 한국의 자국영화 의무상영일수는 전체 365일의 40%인 146일였는데 올 7월부터는 73일로 축소된다. 미국은 왜 지난 몇 년 동안 ‘한미투자협정(BIT)’과 ‘자유무역협정(FTA)’등의 전제 조건으로 스크린쿼터의 축소를 지속적으로 요구하여 온 것일까?
한국의 개봉관 매출 규모는 2005년 기준 8.9억 달러로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에 이어 외형적으로는 전세계 5위의 시장규모를 자랑한다. 미국의 전체 개봉관 매출이 2005년 88억 정도이니 약 10%다. 하지만 한국의 개봉관 영화시장규모는 미국 전체 문화산업 시장규모인 5,543억 달러의 0.16%로 아주 미미하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 작은 시장에서 단순히 자국의 영화 점유율을 더 높이기 위하여 스크린쿼터의 축소를 주장해 온 것일까? 그 배경에는 사실 연간1조 시장도 안 되는 한국 시장에 대한 욕심 보다는 중국 등 영화시장으로서 잠재성이 큰 세계 각 나라가 한국의 스크린쿼터 정책을 모델로 삼고 있는데 대한 문제의식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최근 한류 붐과 함께 60% 이상의 방화 점유율을 보이며 성장하는 한국 문화산업 성장 정책을 중국등이 모델삼아 국가 정책으로 수립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전세계 문화산업 시장의 거대 잠재시장인 중국에는 현재 스크린쿼터 보다 더 심한 규제가 있다. 연간 외국 영화 수입 편수를 최대 20편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영화 수입의 심의 정책도 까다로와 할리웃 영화의 대부분은 심의를 통과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2005년 중국에는 20여 편의 외국 영화가 수입되었다. 반면 중국 영화 제작편수는 해외 합작을 포함하여 약 260여 편이었고 자국 영화의 점유율도 전체 시장의 약60%나 되었다. 이러한 까다로운 중국정부의 정책은 WTO 가입 이후부터 점차 완화되고 있다. 다른 선진국처럼 언젠가는 외국 영화의 수입 허가와 심의는 정부가 아닌 민간으로 이관될 것이다. 이럴 경우 40%의 국산영화 의무상영제도를 유지하며 2000년 이후 20%에서 100%에 달하는 영화 수출 증가를 이루어 낸 한국 영화산업의 정책은 당연히 중국과 같은 문화산업 초기단계의 국가에서는 벤치마킹하기에 좋은 정책 모델이 될 수밖에 없다.
흔히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이 말의 의미에는 세계가 안정적인 경제를 발판으로 문화적 소비를 증가 시킬 것이라는 경제적인 전망이 들어있다. 아시아는 이제 세계 시장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중국 등 성숙되지 않은 시장의 잠재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 시점에서 아시아 문화, 특히 영화 등 문화산업의 주류 컨텐츠가 할리웃에서 아시아 자체의 것으로 대체되고 있는 중이다. 이런 현상의 좋은 예라고 할 수 한류 및 스크린쿼터 같은 규정이 아시아로 향하는 할리웃의 동진 정책에 커다란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거대한 자본과 막강한 배급력, 고도의 기술과 시스템을 가진 할리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아시아로 향하는 동진 정책을 추진하여 왔다. 하지만 300여 년의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미국의 문화로 또 스크린쿼터 축소와 같은 통상 압력으로 과연 수천 년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산업을 지속하여 점령해 나아갈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신항우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미국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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