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에 협회봉사 컴백
80년대 경이적 매출 업계 대형화 주도… 거액 날려 은둔생활도
한인 봉제업계의 산 증인, 영원한 봉제사 천영철(69)씨가 봉제업을 떠난 지 20여년, 한인타운을 떠난 지 10여년만에 다시 한인봉제협회 이사장으로 돌아왔다.
“많이 쉬었습니다. 후배들의 간곡한 부탁도 있고 한인 봉제업계의 재건과 회원들의 결속도 다지고 싶어 다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천 이사장은 지난 69년 봉제업을 시작해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연간 매출 600만달러를 올리는 한인봉제업계의 대형화를 주도한 봉제업의 산증인. 특히 동생 8명이 모두 봉제업에 종사하면서 당시 전체 직원 규모가 600여명에 달해 ‘봉제 천씨 패밀리’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천 이사장은 “80~92년까지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며 “당시 봉제업계에서는 믿기 힘든 연매출 600만달러 이상을 기록했다”고 회고했다. 천씨는 사업 성공에 힘입어 85년부터는 중앙은행의 창립을 준비하며 86년 중앙은행의 탄생부터 97년까지 이사로 활동했다.
시련도 있었다. 천 이사장은 98년 초 미국내 공장을 닫고 그해 여름 멕시코에서 새로운 봉제인생을 열었다. 하지만 멕시코의 지역적 환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실수로 3년만에 그 동안 모았던 1천여만달러에 달하는 모든 재산을 잃고 말았다.
이후 천 이사장은 가족들은 LA에, 자신은 한국에서 지인들의 도움으로 세월을 보낸 뜻밖의 이산가족생활을 했다. 천 이사장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많은 친구들도 만나고 지인들도 만나 미국생활하면서 못다한 정을 나누었다고 말했다.
천 이사장은 “최근 빚어졌던 협회 내의 불미스런 일들을 마무리하고 회원을 비롯한 임원 및 이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이끌고자 20년만에 일선에 나섰다”며 “젊은 임원들과 똑같이 열심히 뛰면서 봉사하겠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천 이사장은 “봉제협회의 이사장을 맡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힘들게 돌아온 만큼 초창기의 열정으로 노력하겠다”며 “올해 계획된 노동법 세미나 및 회원 결속을 위한 행사를 잘 마무리 해 협회 회원사 확대와 임원진의 임기확대를 이루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천 이사장은 지난해 현 이충구 수석부회장의 권유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와 봉제업에 뛰어들어 현재 ‘어패럴 매스터스’를 운영하고 있다.
<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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