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 공립교 15만4,000명 중 상당수 비영어권
민주당 주지사 “법원 명령대로 연간 4,500만달러”
주 의회 장악 공화당의원들 “1,400만달러면 충분”
실상 교육문제 밑에 숨은 것은 선거 앞둔 정치공방
불법이민자 많은 캘리포니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영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그리고 영어교육에 얼마의 예산을 할당해야 하나? 애리조나 민주당 주지사와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이 선거철을 앞둔 상태에서 이 이슈를 둘러싸고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애리조나 교육 논쟁을 촉발시킨 이민문제를 보도했다. 이민자가 많은 캘리포니아에겐 타산지석이다.
외견상으로는 이 논쟁의 성격이 분명해 보인다. 애리조나의 공립학교에 다니는 비영어권 이민자 학생 15만4,000명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문제다. 영어권 동료 학생들에게 뒤쳐지지 않도록 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은 연방 법원의 명령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면 밑에는 한결 복잡한 이슈가 숨어 있다. 이들 비영어권 학생들의 75%는 미국 태생이지만 그 부모는 대다수 불법이민자들이다. 그러므로 불법이민 문제가 다가오는 선거에서 쟁점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제닛 나폴리타노 주지사는 “현재 반이민 정서가 상당하다. 주 의회에서 무언가 조치를 취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고 했다. 납세자가 낸 세금으로 불법이민자들의 자녀 교육비를 충당하는 데 대해 반감이 의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주하원 공화당 원내대표 스티븐 툴리 의원은 의회 내 반이민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주장을 전면 거부했다. 대신 툴리 의원은 주지사의 교육 관련 제안이 학교의 자유경쟁 진작에 소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의 수학 능력을 제고하고 학교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학생 머리 수에 근거에 예산을 책정했기 때문에 의회가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법원의 명령에 따라 주지사는 애리조나 공립학교 영어교육을 위해 연간 4,500만달러의 예산을 책정할 것을 의회에 제안했다. 만일 법원의 명령에 불복할 경우 하루에 적어도 50만달러의 벌금을 물게 돼 있다. 이미 이 달부터 이 규정이 적용되고 있다.
툴리 의원과 다른 공화당 의원들은 주지사가 법원의 명령을 이용해 비합리적인 교육투자를 하려 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보다 훨씬 적은 예산을 들여도 된다는 주장이다. 공화당은 1,400만 달러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합법이민자들의 자녀와 영어권 학생들의 교육예산이 상대적으로 쪼그라들게 된다는 점을 이들은 강조했다. 그리고 이렇게 돈을 쏟아 붓는 것은 오히려 불법이민을 장려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반발했다.
공화당은 자녀를 사립학교나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학교에 보낼 경우 기업의 지원을 받는 방안을 고안했다. 당연히 이들 기업은 기부금에 대해 세금 크레딧을 받게 된다. 주지사는 이를 반대했다. 3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러한 방안은 주정부 세수의 5,000만달러 감소를 가져올 것이란 이유에서다.
정치 분석가들은 공화당이 주지사의 제안에 딴지를 거는 것은 선거를 앞두고 주지사에게 골탕을 먹이려는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주지사는 11월 재선에 출마한다. 공화당은 아직 후보를 정하지 못한 상태다. 결국 교육논쟁이 정치적 이슈인 이민문제와 맞물려 있는 형국이다.
애리조나 유권자들은 2000년 공립학교에서 영어로만 수업을 하도록 하는 주민발의안 203을 통과시켰다. 비영어권 학생들에게는 별도의 영어 보충학습을 시키도록 의무화했다. 2004년에는 불법이민자들에게 부여하던 혜택의 일부를 거부하는 주민발의안 200을 또 통과시켰다. 이 주민발의안의 일부 조항은 법원에 의해 무효화됐지만 말이다.
나폴리타노 주지사는 1월 비영어권 학생들의 영어교육을 위해 예산안을 작성했다. 그러나 주지사와 의회는 이 문제를 놓고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주지사는 돈 문제가 아니라 민주당과 공화당의 기 싸움이라고 했다. 주 재정은 10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할 정도로 양호하기 때문에 교육 예산을 할당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주지사는 이어 애리조나의 불법이민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이는 연방정부의 정책 태만으로 인한 것이라며, “왜 연방정부의 실정으로 이미 미국에서 교육받고 있는 비영어권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가?” 하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툴리 의원은 지난해 5월 주지사에게 넘긴 교육 예산안을 번번이 거부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정치인들이 티격태격하는 동안 영어가 서툰 수많은 학생들은 학교공부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낙제를 하거나 학교를 그만두는 사태도 속출하고 있다. 어른들의 정치싸움에 어린이들이 희생양이 되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거세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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