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토리노 필라벨라 빙상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안현수 등 한국 계주팀이 빙판위에서 송재근 남자대표팀 코치와 박세우 여자대표팀 코치를 향해 큰 절을 올리고 있다. 토리노=연합
최근 4차례 올림픽 매번 전략이 달랐다
한국은 26일 끝난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에서 8개의 금메달 가운데 6개(은 3, 동1개)를 싹쓸이하며 역대 최고성적을 거두었다.
참가선수 모두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달성한 한국은 5차례의 올림픽에서 17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이번 대회 여자 500m에서 우승한 중국의 왕멩(21)은 “한국 선수들이 전략을 세우고 나온 게 분명하지만 뭔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특히 신화통신은 “중국은 힘의 스케이트를 하는데 반해 한국은 스케이트의 기술을 잘 활용한다. 그 차이가 한국이 장거리에서 지치는 않는 이유”라고 보도했다.
쇼트트랙은 기량도 중요하지만 박빙의 승부에서는 ‘두뇌 싸움’이 승부를 가늠한다. 4년마다 한국 쇼트트랙을 빛낸 기발한 작전과 기술을 되짚어 본다.
▦2006년 토리노- 상대 약점을 공략한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고 했던가. 한국은 남녀 계주에서 손자병법의 이치를 잘 활용했다. 4명이 번갈아 뛰는 계주에서 4번 주자는 가장 속도가 떨어지는 선수가 뛰는 게 상식.
하지만 한국은 에이스급인 이호석(20ㆍ경희대)과 변천사(19ㆍ신목고)를 4번 주자로 내세워 중국과 캐나다의 허를 찔렀다.
‘금메달 수호천사’ 변천사는 여자 3,000m 결승의 결정적인 고비에서 2차례나 선두를 탈환해 금메달의 일등공신이 됐다. 남자 5,000m 결승에서도 이호석이 선두를 뺏으면 송석우, 안현수가 이를 지키는 작전을 사용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교대 없이 선두 탈환
세계 최강 중국을 제치기 위해서는 묘수가 필요했다. 한국 여자대표팀이 짜낸 묘책은 ‘중국이 선수를 교대할 때 우리 선수는 교대 없이 반 바퀴를 더 달려 선두를 뺏는다’는 것이다. 계주에서는 통상 1.5바퀴를 돈다. 올림픽을 앞두고 2바퀴를 질주하는 연습을 수없이 해온 주민진이 이 작전으로 선두를 뺏었다.
실력은 뒤졌지만 두뇌싸움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것. 승리의 주역 주민진은 “중국의 실력이 강해 많이 긴장했다”면서 “하지만 금메달은 우리의 몫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 수 위의 실력을 자랑하던 중국은 금메달을 뺏긴 뒤 경악했다.
▦1998년 나가노- 발 내밀기 기술 탄생
한국 쇼트트랙의 ‘전매특허’ 발 내밀기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남자 1,000m 결승이 끝나자 중국의 리지아준은 자신이 우승한 줄 알고 환호했다.
하지만 금메달은 김동성의 몫. 김동성이 스케이트 날을 쭉 내미는 기술을 통해 리지아준보다 0.053초 빨리 결승선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태극기를 휘날리던 김동성의 뒤로 허탈해 하던 리지아준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이경도 여자 1,000m에서 발 내밀기로 중국의 양양S를 0.57초 차이로 제치고 우승했다. 국제빙상연맹은 나가노 올림픽이 끝난 뒤 ‘발 내밀기를 할 때 스케이트 날이 얼음에서 떨어지면 실격시킨다’는 새로운 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 1994년 릴레함메르- 선두 안쪽을 파고들어라
당시 세계 최강은 단연 중국이었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 상대 약점을 찾기 시작한 한국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중국 선수들이 코너를 돌 때 안쪽에 공간이 생긴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때 부터 김기훈, 채지훈, 전이경 등은 코너에서 상대 안쪽을 파고드는 연습을 했다.
김기훈 등은 올림픽에서 코너를 돌 때마다 경쟁선수를 추월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계주에서도 원혜경, 김윤미 등은 중국 선수에 비해 실력이 떨어졌지만 ‘인코스 돌파’라는 신기술로 중국 선수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중국에 대한 열세를 극복하고 이뤄낸 한국 쇼트트랙의 금메달 역사는 스케이팅 기술을 바탕으로 빼어난 전략 및 전술과 대회마다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내는 창의성의 합작품이었던 것이다.
이상준 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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