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남긴 황폐함속
재기의 호흡·희망 표현
봄을 느긋이 누리기에 충분한 3월 넷째 일요일이었다. 오전 한 나절을 여유롭게 보내다 문득, 중요한 일 한가지를 빠뜨린 듯한 느낌을 받고 그것이 무엇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기억의 한구석에서 버티어 준 호세 리몽의 찬란한 일대기를 떠올리며 분주히 외출준비를 마쳤다. 공연장인 아만손 디어터에 앉아 숨을 고르자 곧 무대가 어두워졌다.
호세 리몽은 1908년 멕시코에서 태어났다. 그는 마사 그레이함과 도리스 험프리 이후 새롭게 등장한 남성 무용수이자 안무가이다. 후에 도리스 험프리를 감독으로 ‘호세 리몽 무용단’을 창단했다. 그의 움직임의 특징은 단순하면서도 동작이 매우 크고 강한 힘을 표출하고 있다. 자연스럽고 힘차고 웅장한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다. 모든 동작의 변화에 민감한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또한 그의 춤의 이미지이다.
이날 공연 작품은 지난 64년 런던에서 초연된 도리스 험프리에게 바치는 안무연보 모음곡(A Choreographic Offering), 멕시코의 전통 축제인 ‘죽음의 날’에서 모티브를 얻은 레코르다레(Recordare), 58년 초연된 리몽의 대표적 작품 미사 브레비스(Missa Brevis) 등 3편이었다. 리몽은 인간의 경험과 문학과 역사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안무의 주제를 찾고자 했다. 이를테면 전쟁이 가져다주는 황폐함에 관해 안무함으로써 대중과 아픔을 나누며 희망을 이야기했다. 2006년 봄 이 무용이 우리를 다시 찾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2차 대전 후의 허무와 무기력과 전쟁의 혈흔을 미국인들은 불과 몇 해 전 다시 만나야 했다. 9.11 테러가 바로 그것이었다.
호세 리몽의 안무는 가장 비극적인 곳에서 가장 희망적인 곳으로 향하는 생명의 본질인 ‘희망’과 ‘호흡’을 화두로 던지고 있다. 호흡 속에는 강렬한 생명력이 꿈틀거린다. 호흡 속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초월적 기쁨이 있다.
인간의 지속적인 삶 속에는 바로 인간의 삶의 비극적 요소들을 뛰어 넘어 다시 일어나 ‘호흡’하려는 ‘희망’을 향한 원초적 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곧바로 복구와 재건의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안무는 비교적 난해하지 않다. 몸이 떨어지고 구르고 다시 일어나는 단순한 동작들로 구성돼있다. 몸이 떨어지고 회복하는 자연스러운 리듬을 표현한 것이 전부다. 그러나, 더 깊은 본질에는 솟아오르고, 뛰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뛰어오르는 동안 ‘호흡’이란 거대한 생명의 경이로움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못하게 한다. 그렇다. 우리는 매 순간 ‘호흡’으로 삶을 유지한다. ‘호흡’의 발견. 그것이야말로 삶의 본질에 관한 새로운 조명이 돼야 할 것이다.
공연 관람을 마치고 극장 문을 나서니 일요일 오후의 엷은 햇살이 봄기운을 가득 안고 흘러 다닌다. 이미 ‘희망’이 우리 곁에 와 있다. 천천히 걸어서 로비를 빠져 나왔다. 층계를 가뿐히 내려오며 내 몸에게 나지막이 일러준다. “호흡, 호흡하라!”
김정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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