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연합뉴스) 박성민 기자 = 무덥고 습한 날씨, 고르지 않은 그라운드, 가벼운 접촉에도 드러눕는 대만 선수들, 3-0 승리.
하지만 ‘생각하는 축구’를 표방하며 의욕적으로 나선 ‘1기 베어벡호(號)’의 경기력은 깐깐해진 한국 축구팬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핌 베어벡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6일 대만 타이베이 충산스타디움에서 치러진 2007 아시안컵 예선 대만 원정에서 전반 31분 안정환의 결승골과 후반 8분 정조국(서울) 및 후반 35분 김두현(성남)의 연속골이 터지면서 3-0 승리를 거뒀다. 베어벡은 이날 승리로 ‘사령탑 데뷔 무대’에서 기분 좋은 승리를 맛봤고, 태극전사들은 2006 독일월드컵 16강 진출 이후 떨어진 자신감을 대량 득점을 통해 되살려 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이날 한국 축구는 과연 어떤 변화를 보였을까. 과연 태극전사들은 베어벡 감독이 주창한 ‘생각하는 축구’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은 ‘약팀 징크스’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아드보카트호’와 차별되는 눈에 띄는 전술을 선보이지 못했다.
대만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44위(8월 현재). 이에 반해 한국은 지난달보다 4계단 상승한 52위로 애초부터 이날 경기는 승패를 떠나 한국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많은 골을 넣느냐에 축구팬들의 기대가 쏠렸다.
특히 대만전에 나선 ‘베스트 11’은 정조국(서울), 장학영(성남), 김정우(나고야)만 빼면 전원이 2006 독일월드컵 무대에 나섰던 주전급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전반 31분 안정환의 결승골이 터지기 전까지 단순한 측면 크로스에 의존하는 답답한 공격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베어벡 감독이 강조한 ‘생각하는 축구’와 ‘내용이 좋은 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기만 했다.
오랜만에 A매치에 나선 ‘원톱’ 정조국은 전반 24분과 전반 36분 완벽한 골 기회를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하면서 여전히 골 결정력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또 전반전 동안 이천수와 장학영의 계속된 측면 크로스는 번번이 최전방 공격수들의 머리와 발을 빗나갔다. 이미 독일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충분히 호흡을 맞춰왔던 상황을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상대의 수비를 끌어내기 위한 미드필더진들의 과감한 중거리슛 시도도 없어 측면과 중앙 만을 힘겹게 돌파하는 답답한 상황을 되풀이해 ‘생각하는 축구’를 모토로 내건 베어벡 감독의 의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베어벡 감독은 이날 4-3-3 전술로 시작하다 후반전에 4-2-3-1 전술로 바꾸면서 반전을 시도했다. 그나마 후반 8분 이을용의 정확한 왼발 크로스를 정조국이 달려들면서 논스톱 골로 연결한 게 이날 경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세트플레이였다. 또 후반 30분 정조국과 호흡을 맞춘 김두현의 왼발 중거리포 역시 너무 늦게 터져나왔다.
결국 경기 결과는 3-0의 기분 좋은 승리였지만 내용적인 면을 들여다보면 빠르고 패기 있는 한국 축구의 색깔은 물론 ‘베어벡 축구’의 방향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찜찜한 승부였다.
9월2일 ‘아시아의 강호’ 이란전을 앞둔 베어벡호가 ‘무색ㆍ무취’에서 탈피해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해 본다.
min7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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