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 독자로부터 “한 식품소매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김을 샀다”는 제보를 받고 해당업체를 취재한 바 있다. 당시 나이가 지긋한 업주는 작은 영세업체라서 제품 관리가 소홀했다는 점을 인정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굳은 약속을 했다. 또 업주는 부랴부랴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들을 진열대에서 걷어내며 30년이 넘게 열심히 살아온 만큼 이번 일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기사를 써달라는 간곡한 부탁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같은 독자로부터 또 다시 연락을 받았다. 상당히 격앙된 목소리로 “실명을 밝혀서라도 그 업체의 잘못을 기사화 해야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독자는 기사를 본 뒤 그 김을 들고 교환을 위해 업체를 찾았는데 같은 제품의 김들이 그대로 진열장에서 판매되고 있었고 이를 지적하자 “왜 자꾸 찾아와서 시비를 거느냐”는 말과 함께 심한 모욕을 당하며 매장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결국 취재 당일 기자에게 했던 약속은 당시의 불이익을 면하기 위한 ‘빈말’이었고 독자는 업주로부터 유력한 기사 제보 용의자로 꼽혀 그에 대한 응징을 당한 것이었다.
지난달 3년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일반 대중 식당과 마켓을 찾았는데 종업원들이 어찌나 친절한 지 서비스를 요구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상냥했다. 물론 한국에는 팁이 없었지만 손님에 대한 정성이 가득했다.
업주들 역시 업계 경쟁이 치열해서인지 아니면 이미 몸에 친절이 배어서 인지 매장에 들어오는 손님마다 인사를 건네며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왠지 이런 서비스를 받으며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부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흔히 미국에 살면서 한국의 지인들에게 미국의 삶에 대해 “미국은 차량 질서도 잘 지키고, 모든 문화가 선진국이야, 거리에서 눈을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하고 혹시 어깨라도 부딪히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라고 설명하며 굉장한 자부심을 나타내는 한인들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들의 이민생활이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식당에서는 물병과 컵을 테이블에 던져놓고, 손님도 없는데 뭐가 그리도 바쁜지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는 종업원, 밥이 반도 더 남았는데 계산서를 내밀고,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버젓이 파는 업주, 운전이 조금만 서툴거나 운행에 지장을 줄 경우 가차없이 경적을 울려 데는 운전자 등 이민생활을 통해 힘들게 살면서 여유를 잃었는지 LA의 삶은 어딘가 각박하기만 하다.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정직과 친절을 몸소 실천하기 위한 새로운 마음가짐을 통해 이민생활 문화를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다면 내년 ‘돼지해’는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본다.
<김진호>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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